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김기종씨가 1일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결국 적용되지 않았고, 배후세력도 확인되지 않았다. ‘종북 테러’의 배후를 캐겠다며 한 달 가까이 고강도로 진행된 검경 수사는 요란한 빈 수레였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에서부터 청와대, 여당, 검경에 이르기까지 국가적 중대 사건에 대한 대처 역량이 얼마나 한심한 수준인지 새삼 확인시켜 주는 사례다.
리퍼트 대사가 피습당한 3월5일 중동을 순방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이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단독으로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철저히 밝혀야 할 것”이라며 ‘배후 수사’ 지침을 내렸다. 정작 피해자 쪽인 미국에서는 극단주의자의 ‘폭력’으로 규정한 사건에 이렇게 호들갑을 떤 것은 한-미 관계에 하등 이로울 것도 없고,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에도 부정적 영향만 끼칠 뿐이었다. 당시로서도 김기종씨가 돌출적 행동을 보여온 외톨이성 인물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알려져 있었다. 외교·안보와 관련한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을 때 정밀하게 실상을 파악하고 국익을 고려해 신중히 행동해야 하는 기본조차 지키지 않고 호들갑만 떤 셈이다.
‘종북몰이’를 통해 이 사건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는 정략적 태도는 더욱 꼴사나운 일이었다.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을 “종북 숙주”라고 공격했고, 검경은 100명이 넘는 인력을 투입해 무슨 간첩단 사건이라도 캐는 양 난리법석을 피웠다. 일부 언론도 덩달아 춤을 췄다. 하지만 그 수사 결과는 듣고 있는 사람이 다 민망할 정도로 초라했다. 종북의 ‘ㅈ’ 자라도 붙일 여지가 생기면 앞뒤 가리지 않고 마녀사냥에 나서는 공안세력의 비합리·비이성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그러고도 청와대·새누리당·검경 누구도 진지하게 성찰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넘어가기엔 그동안의 난리법석이 도를 넘었다. 이 사건을 관심 있게 지켜본 국제사회가 이런 허무하고 무책임한 결말을 어떻게 바라볼지 생각하면 낯이 화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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