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주둔 지역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 피해자 2명이 처음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진실을 규명하고 베트남전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진전시킬 좋은 기회다. 무엇보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면서도 베트남전 문제는 회피하려는 이중적 태도를 극복해야 한다.
피해자 2명이 참석해 7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 안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베트남전 사진전 리셉션 행사가 베트남전 관련 단체들의 ‘압력’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은 유감스럽다. 조계종 쪽은 이들의 요구를 받고 지난 3일 갑자기 대관을 취소했다. ‘대한민국 월남전 참전자회’와 ‘대한민국 고엽제 전우회’ 등은 민간인 학살이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해왔다.
피해자 2명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론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자신들의 가족과 이웃에 닥친 비극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당시 소년·소녀였던 두 사람은 지금도 고통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베트남 정부는 한국군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민간인이 5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특히 1968년 1~2월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구정대공세 직후 한국군이 베트남 중부에서 베트콩 수색·토벌 작전을 벌이면서 많은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1990년 후반부터 이 문제가 불거지자 1998년과 2004년 베트남을 방문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베트남 쪽에 사과의 뜻을 밝힌 바 있다.
베트남 정부가 공식적으로 민간인 학살 문제를 우리 정부에 제기한 적은 없다. 자신들은 미국에 맞서 싸웠을 뿐 한국은 주된 상대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베트남 사람도 많다. 하지만 베트남에는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 세워진 ‘증오비’가 50~60개나 있다고 한다. 많은 베트남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당시 상처가 세월을 뛰어넘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식민지배 역사와 분단, 전쟁의 상흔과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 등을 공유한다. 올해는 베트남전 종전 4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당시 한국군이 본의 아니게 민간인의 죽음에 연루됐다고 하더라도 이들 역시 피해자일 뿐이다. 문제를 풀어야 할 주체는 어디까지나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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