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외교 비리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아오던 경남기업의 성완종 전 회장이 9일 목숨을 끊었다.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로 한 날 이런 비극이 벌어졌다.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유족들은 얼마나 놀랍고 황망하겠는가.
성 전 회장은 유서에서 ‘억울하다’는 심경을 밝혔다고 한다. 8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당사자로선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자신이 “엠비(이명박) 정부의 피해자”라며, 그런데도 전 정부 수사의 ‘표적’이 됐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내건 부당대출과 회삿돈 횡령 등의 혐의도 대부분 부인했다. 검찰 수사를 수긍할 수 없고 자신은 억울할 뿐이라는 감정이 격앙된 나머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검찰 수사에 무리한 점은 없었는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범죄 수사는 분명한 위법 사실을 정확하게 집어내 그에 합당한 형벌과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본령이다. 잘못이 분명하다면 범죄를 저지른 이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형벌을 통한 교정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이 얽힌 대형 비리사건이라고 해서 달라질 일은 아니다. 당사자가 범죄 혐의를 인정하기는커녕 검찰 수사의 정당성까지 문제삼으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였다면, 검찰 수사에 무리수나 큰 구멍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검찰의 전방위 사정 수사에 대해선 가뜩이나 걱정이 많았던 터다. 기업·공직사회·여당 등의 분위기를 다잡고 지지율을 회복해야 한다는 정치적 필요가 앞선 나머지, 확실한 범죄 혐의를 포착하지 못한 상태에서 밀어붙이기 식으로 무리한 수사를 강행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비극적인 결과를 빚은 일도 한둘이 아니다. 성 전 회장의 죽음 앞에서 검찰 책임을 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일로 자원외교 비리 수사는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됐다. 경남기업을 고리로 자원개발 공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하려던 검찰의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의혹이 분명한 자원외교 비리를 예서 덮을 수는 없다. 경남기업이 아니라도 해외자원개발사업에선 권력의 개입과 검은돈의 흔적이 곳곳에서 이미 드러났다. 비극적인 이번 사건이 그런 일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검찰은 제대로, 철저하게 수사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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