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과 9일 국회에서 진행된 여야 대표 연설은 정쟁의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며 비난하기 바빴던 과거의 국회 연설과는 상당히 달랐다. 격한 어조로 서로 공격하는 대신에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데 주력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그런 점에서 ‘상생 정치’의 가능성을 국민에게 보여줬다. 국회 연단에서의 말이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유 원내대표의 연설은 야당도 놀랄 정도로 역대 어느 집권당 대표 연설보다 파격적이었다. “새누리당은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과 중산층 편에 서겠다”고 밝힌 그의 연설이 실제로 집권여당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관심사다. 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여당 대표로선 이례적이고, 진영을 뛰어넘어 ‘합의의 정치’를 주창한 것도 분열과 대결에 익숙한 우리 정치풍토에선 평가받을 만하다.
문 대표의 연설은 경제에 집중됐다. 그는 “월 급여 208만원도 안 되는 월급쟁이가 절반을 넘는 왜곡된 구조에선 성장이 지속될 수 없다”며 ‘더 벌어 더 소비하고 더 성장하는’ 소비 주도 성장론을 주장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를 겨냥해 “경제민주화와 복지, 사회대통합을 약속했지만 돌아온 것은 서민경제 파탄과 국민 분열”이라고 비판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정부 비판보다 경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여야 대표 모두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지만, 국회의 기본 기능이 행정부 감시·견제라는 점에 비춰보면 비판 자체가 정치적 긴장과 대결을 격화시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유 원내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양극화 문제 제기를 높이 평가했고 문재인 대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토목 인프라를 구축한 점을 평가하는 등 서로 인정하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정치에선 ‘말’이 중요한데, 이렇게 여야 대표가 원색적 비난과 공격을 피하려 애쓴 건 앞으로 원만한 정국 운영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물론 현안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나 공무원연금, 어떻게 성장을 할 것인지 등에 관해 여야 견해는 여전히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하지만 여야가 정책 현안에서 다른 의견을 내놓고 토론하고 경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더 중요한 건, 여야 모두 생각이 비슷한 사안부터 정책화에 합의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다. 대표적으로 유 원내대표와 문 대표 모두 증세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중부담 중복지’에 비슷한 시각을 드러낸 이상, 하루라도 빨리 국회에서 이 문제를 협의하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 역시 여야 대표가 모두 언급한 만큼 미룰 이유가 없다. 이렇게 합의 가능한 부분부터 상생의 정치를 실현해 나가야 국민도 정치인을 다른 눈으로 보고 정치에 희망을 걸게 될 것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