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구조 개편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끝내 무산됐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9일 “논의과정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사안에 대해 후속 조치를 추진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주도로 구조 개편 작업을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현행 노동시장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노사정 대화가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애초부터 논의의 틀이 잘못 짜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노동계의 반발을 무시하고 섣불리 ‘밀어붙이기’에 나서지 말고, 이제라도 올바로 된 논의를 할 새판 짜기에 나서야 한다.
우선,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현행 노동시장 구조의 핵심은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뉜 이중구조다. 소수 대기업에만 성장의 과실이 몰리는 걸 막기 위해선 단순한 노사관계 개선을 뛰어넘는 산업정책과 경쟁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대기업(원청업체)의 불공정거래 엄단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정규직 과보호론’을 들먹이며 기존 정규직의 특권 지키기가 문제의 본질인 양 몰고갔다. 첨예한 쟁점이었던 해고 및 취업규칙 요건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정부는 ‘해고 요건 완화’가 아니라며 항변하지만, 그간 정부의 행태가 노동계의 불신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
중소기업·비정규직의 이해를 반영하도록 협상 틀도 다시 짜야 한다. 기존 협상 테이블엔 노동계 대표로 대기업·사무직 조합원 비율이 높은 한국노총만 참여했다. 국내 노동자의 88%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경영계 대표 역시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다. 설령 대타협이 이뤄진다 해도 현장에 끼치는 효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원칙이 바로 서고 협상 틀이 다시 짜인다는 전제 아래, 어느 정도 의견 수렴이 이뤄진 쟁점은 논의를 진전시켜 결실을 내는 게 바람직하다. ‘일괄타결’이 원칙이었으므로 합의에 이른 게 아무것도 없다는 한국노총의 주장도 이해는 되나, 그렇게만 버틸 일이 아니다.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 및 임금피크제 등 무작정 미룰 수만 없는 현안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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