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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비리척결 시험대 된 ‘성완종 리스트’

등록 2015-04-10 18:37

자원개발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불법 정치자금 제공 리스트’가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성 전 회장은 숨지기 전 언론 인터뷰에서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2006년과 2007년에 각각 10만달러와 7억원을 전달했다”고 폭로했다. 그의 주검에서 발견된 메모에서는 유정복 인천시장 3억,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2억, 홍준표 경남지사 1억원 등에다,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완구 국무총리의 이름도 발견됐다. 박근혜 정권의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3명을 포함해 권력의 핵심 실세들이 한꺼번에 검은돈 수수 의혹에 휩싸인 충격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 전 실장 등을 비롯해 당사자들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의 증언은 너무 절박하고도 구체적이다. 죽음을 앞두고 세상의 마지막 순간을 정리하면서 남긴 말에는 진실이 깃들어 있는 법이다. 몇 시간 뒤 세상을 하직할 사람이 굳이 거짓말로 무고한 사람들을 해코지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돈을 전달한 시기와 장소, 정황도 “2006년 9월 롯데호텔 헬스클럽”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 강남 리베라호텔” 등으로 매우 구체적이다.

성 전 회장이 현 정권의 핵심 인사들과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병기 비서실장의 해명 과정에서도 확인된다. 이 실장은 “성 전 회장이 통화해서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며 구명을 요청한 바 있다”고 밝혔다. 사회적 이목을 끄는 중요 사건의 수사 대상자가 청와대 비서실장과 직접 통화를 할 수 있었다는 것부터가 매우 이례적이다. 그가 이 실장과 직접 통화할 정도라면 다른 친박 실세들한테도 여기저기 구명 요청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이는 숨진 성 전 회장이 ‘금전적 도움’ 등을 매개로 평소 친박 인사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리라는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성 전 회장이 죽으면서 남긴 불법 정치자금 리스트의 진위를 밝히는 일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검찰은 어떻게든 이 껄끄러운 사건을 피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성 전 회장이 이미 고인이 된 상태에서 관련자들이 혐의를 부인하면 그만이고,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따위의 이유를 댈 수도 있다. 하지만 검찰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당시 성 전 회장의 자금 입출금 내역, 주변 인사들의 증언, 금품 전달 장소로 지목된 호텔들에 대한 탐문수사 등 문제는 검찰의 진상규명 의지가 있느냐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 정권 전체의 도덕성이 걸린 문제지만. 동시에 철저한 수사 여부도 정권의 도덕성을 재는 잣대로 등장했다.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서 비리의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공언이 과연 진실한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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