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6일이면 안산 단원고 학생 250명을 비롯해 모두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빚어진 지 1년이 된다.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은 그때나 지금이나 멈출 줄을 모른다. 많은 국민들 또한 세월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마당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사 1주기 날에 외국 방문길에 오른다고 한다. 국민 대다수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 같아 안타깝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콜롬비아와 페루, 칠레, 브라질 등 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해 16일 오후 출국한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다만 출국일이 세월호 1주기인 점을 고려해 오전에 추모 일정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이왕 추모 일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출국일을 하루 정도 늦출 수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 운영 시스템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개혁과 대변혁”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국민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고 슬픔에 잠겼던지 경제활동 등도 영향을 받았다. 그런 만큼 대통령으로서 하루가량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을 달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바람을 뒤로한 채 오후에 출국한다고 하니 박 대통령의 공감과 소통 능력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의 정무 판단력도 의심스럽다.
외국 정상과의 회동 일정을 늦추는 게 적절하지는 않다. ‘국익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남미가 우리의 주요 시장으로 떠오르는 상황이니 더 그렇다. 하지만 국내 상황을 설명하면 상대국도 이해 못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이런 자세를 보이지 않으니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를 직접 조문한 것과 세월호를 대하는 태도를 비교해, 박 대통령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게 아니냐는 냉소적인 얘기도 한다. 박 대통령은 억울할지 모르지만 그게 민심이다. 지금이라도 박 대통령이 일정을 재고했으면 좋겠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