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자살 전날 그를 만났던 측근들에게 15차례나 전화를 걸어 대화 내용을 캐물었다. 이 총리는 총리실 전화가 아닌 개인 휴대전화로 이용희 충남 태안군의회 부의장과 김진권 전 태안군의회 의장에게 각각 12차례, 3차례씩 전화를 걸어 “(성 전 회장과) 무슨 대화를 나눴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성 전 회장이 자살하기 전날인 8일 한 시간가량 그를 만났던 사람들이다. 이용희 부의장은 “성 전 회장이 ‘이완구를… 이완구를… 어떻게…’라고 이완구 총리 이름을 불렀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한 나라의 국무총리가 비리 혐의로 수사받다 자살한 인사의 발언 내용을 개인적으로 알아보려 십수차례나 전화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뭔가 켕기는 게 있으니 그렇게도 성 전 회장의 입을 두려워한 게 아니겠나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성 전 회장이 자살 전날 이완구 총리의 이름을 여러 차례 불렀다는데, 왜 하필 이 총리를 그렇게 애타게 찾으며 배신감을 토로하는 듯한 얘기를 한 건지도 몹시 궁금하다.
이 총리는 “(이 부의장 등과) 통화한 건 서너 차례고 나머지는 통화가 안 됐다. … 2006년 이후 경남기업이나 성 전 회장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게 없다”고 무관함을 주장했다. 하지만 성완종 전 회장 쪽은 “(성 전 회장과의) 대화 내용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김진권 전 태안군의회 의장에게 이 총리가 ‘지금 5천만 국민이 시끄럽다. 내가 총리니까 나에게 (대화 내용을) 얘기하라’고 고압적 태도를 보였다”고 말한다. 국무총리의 처신으로선 매우 부적절하고, 오히려 국민적 의혹만 키우는 행동임이 분명하다.
이번 사건처럼 현 정권의 전·현직 핵심 인사들이 한꺼번에 수사 대상에 오르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여당 내부에서 특별검사 주장이 나올 정도로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 대한 감시 눈초리는 더욱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국무총리는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 장관에 대한 인사 제청권을 갖고 있다. 수사 내용을 알려고도 묻지도 말아야 할 국무총리가 성 전 회장 측근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걸어 “총리인 나에게 얘기하라”고 윽박지른 저의가 무엇인지 참으로 해괴하다. 이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훨씬 철저하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성 전 회장에게 이상하리만큼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이완구 총리만이 아니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성 전 회장의 전화를 직접 받아서 그의 호소를 들어줬다. 친박 실세로 통하는 서청원 의원도 성 전 회장이 자살하기 며칠 전 그의 전화를 받고 만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이 성 전 회장의 전화를 거절하지 못한 건 단지 개인적 친분 때문이었을까, 그 이상의 뭔가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었던 건 아닐까, 국민들로선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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