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한다. 박 대통령이 해외에 머무는 27일까지 국내에선 이완구 국무총리가 대통령 직무를 대행한다. 그런데 이 총리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온 국민이 옷깃을 여미는 추모일에 대통령은 해외로 떠나고, 안에선 권위를 상실한 ‘식물총리’가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꼭 이 총리 문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세월호 참사 1주기에 대통령이 외국 순방에 나서는 건 매우 부적절하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해외 순방은) 대외적으로 약속한 국가적 사업이다. 연기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말했지만, 굳이 ‘국가적 사업’ 날짜를 그날에 맞춰 잡은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순방국 정상의 일정 때문이라고 외교당국은 설명하는 모양인데, 국민의 동의와 지지보다 외국 정상 일정이 더 중요한 건지, 이 정권은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국정을 운영하는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다. 시중엔 ‘대통령이 세월호 추모행사를 불편해하기에 외국에 나가 있으려 한다’는 얘기마저 떠도는 실정이다.
대통령 직무를 대행할 이완구 국무총리는 지금 수뢰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당장 내일이라도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른다. 더구나 이 총리는 여당 안에서도 사퇴 압박을 받을 정도로 이미 권위와 통솔력을 잃어버렸다. 마침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워싱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참석차 15일 출국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는 22~24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반둥회의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 이런 상황을 정상이라고 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대통령 순방 일정을 조정하는 게 마땅하다. 그게 어렵다면 이완구 총리를 사퇴시키고 최소한 부총리 중 한 사람은 대통령 순방기간 중 국내에 계속 남아서 어떤 상황에서도 국정 공백이나 이완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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