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청와대에서 갑자기 이뤄진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긴급 단독회동은 온 국민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이완구 국무총리의 거취 문제를 비롯해 작금의 정국 현안과 관련해 뭔가 ‘중대 결단’이 발표되지 않을까 하는 관측이 자연스럽게 제기됐다. 하지만 회동 결과는 허무할 정도였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순방을 다녀온 뒤 결정하겠다” “의혹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길이라면 어떠한 조처라도 감수할 용의가 있다”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런 알맹이 없는 ‘맹탕 회동’을 위해 그렇게 법석을 떨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이날의 청와대 회동은 박 대통령이 현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난국을 헤쳐나갈 해법도 없는 ‘무개념 대통령’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을 뿐이다.
우선, 박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들이 줄줄이 비리 의혹에 연루된 상황에 대한 아무런 사과나 유감 표명도 없이 훌쩍 중남미 순방을 떠나버렸다.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해 정권의 몸통 전체가 부패 의혹을 받고 있는 전대미문의 상황이라면, 대통령으로서 일단 국민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도 표시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송구스러운 마음도,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을 달래줄 생각도 전혀 없었다.
박 대통령이 이완구 국무총리의 거취 문제 등을 순방을 다녀온 뒤 결정하겠다고 한 것도 한가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형사 피의자 총리’가 대통령의 부재 기간 동안 직무를 대행할 수 없는 것은 상식에 속하며, 오히려 이 총리의 거취 문제를 둘러싼 논란의 지속은 오히려 국정 공백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박 대통령이 진정 사태를 수습할 요량이라면 이 총리의 거취 문제부터 결정짓는 것이 첫걸음인데도, 박 대통령은 ‘골치 아픈 문제는 일단 미루고 보자’는 안이한 사고에 머물렀다.
박 대통령이 전날에 이어 또다시 “이번 일을 계기로 부정부패를 확실하게 뿌리뽑는 정치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 것은 더욱 심각하다. 이 총리의 사퇴 등 당장 눈앞에 드러난 권력 핵심들의 비리 의혹 규명을 위한 조처는 외면한 채 엉뚱하게 ‘정치권 전반’을 겨냥한 발언을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 대해 “대단히 복잡하고 광범위한 수사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야당에 대한 일종의 ‘협박’이자 ‘물귀신 작전’의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이 정권이 아예 그쪽으로 방향을 정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이날 “공무원연금 개혁 등을 4월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말한 대목에 이르면 더욱 기가 막힌다. 과연 지금의 정치 상황에 그런 법안 처리가 가능하다고 박 대통령은 진정 여기고 있을까. 박 대통령이 정말 그렇게 믿고 있다면 판단 능력에 심각한 이상이 있다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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