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에 근무하는 현직 판사가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에 반대하는 글을 16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렸다. 박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명백히 실패한 수사인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에 대해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는 등 정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인 대법관으로서 자격이 없음을 드러낸 바 있다. 오죽했으면 현직 판사가 “제가 속한 사법부에 누가 되지 않을까라는 점 때문에 수십번을 생각하고 주저”한 끝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피력했겠는가.
글을 쓴 박노수 판사는 “박 후보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축소를 물리치고 공을 세운 검사’가 아니라, ‘은폐·축소 기도를 알면서도 묵인 또는 방조한 검사’에 가깝다는 것이 이번 청문회의 전 과정을 보고 난 저의 판단”이라며 그 근거를 조목조목 들었다. 또 “함께 수사를 담당했던 안상수 전 검사(현 창원시장)는 윗선의 외압이 지속적으로 있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 박 후보자는 그러한 외압을 전혀 몰랐다고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냐”며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축소하는 데 협력·순응한 검사가 6월항쟁을 거쳐 탄생한 민주헌법하의 대법관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은 절대 아니 될 일”이라고 말했다. 청문회 내용과 현대사에 대한 객관적 인식에 바탕을 둔 법관다운 사실판단이요, 통찰이다.
박 후보자에 대한 반대 의견이 법원 내부에서까지 표출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일이다. 박 후보자는 신영철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임명 제청됐는데, 신 전 대법관은 법원장 시절 ‘촛불집회 사건’ 재판에 개입해 법관 500여명으로부터 “재판권 독립 침해”라는 반발을 샀던 인물이다.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기는 많은 국민은 물론이고 법원 내부로부터도 ‘자격 미달’ 판정을 받는 인물이 잇따라 최고 법관에 오른다면 사법부의 존재 의의와 권위는 송두리째 부정되고 말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더 늦기 전에 박 후보자 임명 제청을 철회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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