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자리에 대한 이완구씨의 집착과 여권의 무대책이 대통령 부재와 맞물리면서, 우려했던 대로 국정 공백과 국회 마비의 상황으로 달려가는 느낌이다. 청와대와 정부, 새누리당은 19일 오후 당정청 협의회를 열어 주요 현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김무성 당대표와 이완구 총리,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참석한 회의는 아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 이후 고위급 협의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하지만,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인 상황에서 당정청의 책임자가 얼굴을 맞대는 게 이상할 정도로 지금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그래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주재로 실무협의를 했지만, 이런 상태에서 국정 논의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논의 주제인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노동시장 구조개편 문제 모두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사안들이다. 그런데 국무총리는 권위와 신뢰를 잃고 새누리당 역시 이런 총리를 큰 정치적 부담으로 여기는 상황에서 누가 국정 현안을 책임지고 이끌어 나가려 하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귀국할 때까지 열번 백번 당정청 협의를 해도 주요 국정 현안의 진전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국회 역시 다르지 않다. 가까스로 활동기간을 연장한 자원외교 국정조사특위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직격탄을 맞았고, 국회 상임위 활동 역시 현 정국의 무게에 눌려 버린 상태다. 여기에 새정치민주연합은 이완구 총리 해임건의안을 제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과거 야당이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제출한 적이 여러 번 있지만 대부분 표결까지 가지 않았고, 표결까지 가더라도 모두 부결됐다. 그래서 야당의 행동을 단순한 정치공세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완구 총리 해임건의안 문제는 여당인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상당수 의원이 공감을 표시한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상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새누리당 지도부 역시 속으론 총리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총리의 체면을 생각해 ‘박근혜 대통령 귀국 때까지는 현 상태를 유지하자’고 하는 게 과연 국민을 위한 선택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지금의 국정 혼란과 혼선을 끝낼 책임은 우선 이완구 총리 자신에게 있다. 해임건의안 표결로 더 큰 혼란이 오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는 게 최선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대통령 부재’를 탓하지 말고 하루빨리 국정을 정상화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미 민심은 기울었다. ‘시한부 총리의 덫’에 걸려 행정부에 이어 국회까지 파행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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