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행사에 ‘차벽’이 다시 기괴한 모습을 드러냈다. 2008년 촛불집회 때 본격 등장해 ‘명박산성’이라는 조롱을 받았던 경찰 차벽은 이후 집회·시위를 과잉 봉쇄하는 수단으로 남용됐지만, 2011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법적 근거가 허물어진 상태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추모 인파가 몰리자 경찰은 불법·폭력 집회를 막겠다며 건너편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에워쌌다. 이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헌재는 “불법·폭력 집회나 시위가 개최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견줘 차벽 설치는 “전면적이고 광범위하며 극단적인 조치이므로,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취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이라고 규정했다. 나아가 급박·명백·중대한 위험이 있더라도 “불법·폭력 집회에 참여할 의사를 가지고 있지 아니한 일반시민들의 통행까지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종합해보면 사실상 차벽 자체를 금지한 결정이라고 봐야 한다.
경찰은 16일과 18일 차량 470여대를 동원해 광화문광장에서 종로까지 거대한 차벽을 설치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청와대로 진출한다는 정보보고가 있었다고 이유를 설명한다. 청와대 앞에서 집회·시위가 열리는 것을 꼭 금지해야 하는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청와대 들머리에서 한참 떨어진 광화문광장과 종로 일대부터 차벽을 설치하는 것은 ‘필요최소한의 범위’를 벗어난 것임이 틀림없다. 또한 차벽이 ‘사전에’ 설치됐다는 행사 주최 쪽 주장에 비춰보면 급박성의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 더구나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평화적으로 행진하는 시민들에게 도대체 어떤 ‘명백하고 중대한 위험성’이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 급박·명백·중대성 요건이 성립했다고 하더라도 이번 차벽 설치는 일반 차량과 인근 거주자, 일반 보행자, 지하철 이용객 등까지 통행을 막았다는 점에서 헌재 결정에 반한다.
시민의 목소리를 차단하는 수단으로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차벽이 재등장했다는 것은 역사의 퇴행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헌재가 “표현의 자유가 가지고 있는 헌법적 중요성을 고려”해 위헌 결정을 내린 뒤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경찰이 되레 헌재 결정을 깔아뭉개는 사태는 민주와 법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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