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노동행위를 감시하는 근로감독관의 입에서 노동자를 노예에 빗댄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튀어나왔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소속 한 근로감독관은 밀린 임금을 해결해달라며 찾아온 경남 김해지역 인터넷 설치기사 8명에게 “사실은 요새 노예란 말이 없어 그렇지 노예적 성질이 근로자성에 다분히 있어요”라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감독관은 특히 “현재의 노동법도 옛날 노예의 어떤 부분을 개선했을 뿐이지, 사실 이게 돈 주고 사는 거야”라며 노동법을 그 근거인 양 들먹이기도 했다.
근로감독관이란 근로기준법 및 기타 노동관계법령에 따라 사업현장의 노동행위를 감독하고, 법을 위반한 사업주에 대해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담당하는 국가공무원이다. 이런 엄중한 책무를 맡은 공무원이 억울한 사정에 처한 노동자들의 호소를 묵살하고 모욕적인 언행을 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번 사건은 결코 개인의 ‘일탈행위’라고 가벼이 보아넘길 일이 아니다.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정부의 삐뚤어진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노사정 대타협 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노동계에만 덮어씌우려는 정부의 최근 행태에서 이런 의심이 굳어진다. 이달 초 노사정 대타협이 무산된 뒤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편 논의를 재개하기 위한 새 틀을 짜려는 노력보다는 ‘쉬운 해고’ 쪽에 초점을 맞추고 밀어붙이기식 독자 행보에만 매달리고 있다.
특히 예산권을 쥔 기획재정부가 노사정 대타협 실패를 핑계로 국공립 보육시설을 30%로 확대하는 기존 합의사항마저 느닷없이 뒤집는 건, 애초 노사정 대화에 나선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정부가 ‘해고 및 취업규칙 요건 가이드라인’에 막판까지 집착한 것도 주무부서인 고용노동부보다는 기재부의 입김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정부는 처음부터 노사관계의 무게중심을 사쪽으로 쏠리도록 하는 데만 관심을 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잠재우지 못하는 한 노사정 대타협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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