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차기 총리 후보자 선임과 관련해 ‘전라도 총리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김 대표는 최근 광주 서구을 지원유세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말씀드린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경질되면 그 자리에 전라도 사람을 한번 총리로 시켜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정현 최고위원이 총리를 하면 얼마나 잘하겠는가”라는 말도 했다.
새누리당 수뇌부가 박근혜 정부 들어 한 번도 거론한 적이 없는 ‘전라도 총리론’을 노골적으로 꺼내든 것은 그만큼 지금의 상황이 다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여권의 지지율이 떨어진데다 재보선의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서울 관악을 등은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곳이다. 새누리당으로서는 호남 총리론을 앞세워 이 지역 출신 유권자의 감성을 파고들 필요가 있다고 여길 법도 하다.
하지만 김 대표의 말에는 국민 통합이나 지역갈등 해소를 향한 진정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총리 자리를 선거운동의 도구 정도로 전락시킨 것부터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선거 때만 되면 그럴듯한 말로 유권자들을 꾀는 새누리당 전략이 이번에는 호남 총리론으로 나타났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김 대표가 차기 총리로 “전라도 사람인 이정현 최고위원”을 공개적으로 추천한 대목에 이르면 더욱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 최고위원은 한평생 호남의 정서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길을 걸어왔다고 할 인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입’을 자처하며 대통령과 관련된 일이라면 사사건건 억지주장을 펼쳐온 인물을 총리로 시키면 나라가 통합되고 갈등이 수그러든다는 말인가.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은 김 대표가 너무나 잘 알 것이다. 여당 대표로서 총리 후보자 천거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김 대표의 입이 너무 가볍다.
지금 중요한 것은 ‘호남 총리’니 ‘충청 총리’니 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지역 출신 총리론은 오히려 지역감정을 들쑤시고 갈등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총리 후보자의 출신 지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총리상에 부합하는 인물을 고르는 일이다. 지금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사실상 붕괴 상태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의 측근 인사나 수첩에 적힌 인물만을 놓고 고민해서는 지금의 난국을 타개할 길이 없음도 분명해졌다. 내 편 네 편 가르지 말고, 진정으로 신망과 능력을 갖춘 인물을 과감히 발탁해 국정운영에 일대 쇄신을 기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호남 총리론’보다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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