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내놓은 대국민 메시지는 사과도, 유감 표명도, 책임감의 표출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적반하장식 도발이며, 낯 두꺼운 역공, 치졸한 정치공세에 불과했다. 변명과 발뺌, 책임 미루기, 사태 핵심 피하기 등 그동안 수없이 비판을 받아온 박 대통령 특유의 화법이 총동원된 결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박 대통령은 이완구 국무총리 사퇴에 대해 “유감”이라는 단어를 딱 한 차례 사용하긴 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이 유감인지는 아리송하다. 이 총리의 사의 수용을 “안타깝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그의 부정부패 연루 의혹 자체가 유감스럽다는 뜻은 아닌 게 분명해 보인다. 오히려 이 총리가 혐의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여론에 밀려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최측근들이 부패 혐의에 연루된 상황에 대해서는 아예 ‘안면몰수’를 작심하고 나섰다. 총리와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부정부패로 수사 대상에 오른 미증유의 상황이라면 대통령으로서 최소한 일언반구라도 하고 넘어가는 것이 예의인데도 그는 눈썹도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로부터 내려온 부정과 비리, 부패 척결을 해서 새로운 정치개혁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이번 사건을 ‘과거 정치권 전반의 문제’로 몰아갔다. 이른바 유체이탈식 화법의 진수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살포한 불법 정치자금의 최종 수혜자는 바로 박 대통령이고, 이번 사안은 불법 대선자금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아랫사람들이 검은돈을 받아서 자신의 선거를 치른 사실이 드러나도 박 대통령은 ‘나는 몰랐다’고 발뺌만 하고 넘어갈 것인가. 자신이 정치개혁의 대상이 된 상황인데도 스스로 개혁의 총지휘자를 자처하고 나섰으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메시지에 방점을 둔 것은 오히려 성 전 회장 특별사면에 대한 진상조사 필요성이다. 특별사면 문제가 ‘성완종 리스트’ 사건의 곁가지일 뿐이라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의 물타기 정치공세에 힘을 보태기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더욱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사면권 행사를 수사 대상으로 삼겠다는 어이없는 발상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는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에 함축된 앞으로의 정국 운영 방향은 분명하다. 측근들의 부정부패 의혹을 최대한 덮고, 수사의 물꼬를 야권의 부정부패 의혹 및 특별사면 문제로 돌려 정국을 돌파하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4·29 재보선 결과가 새누리당에 유리하게 나올 경우 박 대통령의 오만함은 더욱 하늘을 찌르고, 물타기식 수사를 통한 꼼수 정국운영은 더욱 탄력이 붙을 것이다. 결국 재보선 결과는 권력의 총체적 부패 추문에 대한 수사의 향방과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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