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이 없는 세상,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 모든 사람이 지위와 재산 따위와 관계없이 존재 자체로 존중받고 인정받는 세상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장서 헌신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때로 불의한 권력에 맞서야 하는 까닭에 이런 활동에는 위험이 따를 수도 있다.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려고 애쓰는 시민단체의 활동을 보통 인권활동이라고 부른다. 인권활동은 분명히 우리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사회적 서비스다.
그런데 인권활동가들 자신이 ‘인간다운 삶’과 동떨어져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민간단체인 ‘인권중심 사람’이 전국 주요 인권단체 41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활동가 생활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평균 나이 34.8살인 상근활동가들의 월평균 기본급이 107만원이다. 법정 최저임금인 116만원에도 못 미친다. 10명 중 4명은 월 기본급이 100만원도 안 됐으며, 상여금은 연평균 36만원에 불과했다. 은퇴자들의 사회봉사도 아니고 도저히 젊은 활동가들이 결혼과 출산, 육아 등을 해나갈 수 없는 열악한 여건이다.
활동가들은 ‘소비 없는 삶’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고 한다. 월평균 생활비는 111만원으로 주거비, 의료비, 식비 등을 대기도 힘겨운 수준이다. 활동가 10명 가운데 4명은 소속 단체 차원에서 4대 보험 가입도 안 되고 있다. 말이 희생과 헌신이지, 극도로 열악한 여건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방식은 당연히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활동가들이 장래 전망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 일부 활동가들은 인권단체 현장을 떠나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회원들의 후원금과 약간의 수익사업으로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인권활동에 대한 사회적 지원책을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 인권단체에 사무공간을 지원해준다면 해당 단체들은 활동가 처우 개선에 여력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사무공간 지원은 지방자치단체, 교육기관, 종교단체 등이 머리를 짜내면 기존 건물에서도 틈새 공간을 마련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인권활동가를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인권활동이 약화하면,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들이 차별받고 무시당할 때 어려움을 호소하기가 어려워진다. 사회의 안전과 품격에 관한 문제다. 인권활동이 공동체에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임을 인식하고 사회적 비용 지급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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