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을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고배를 마신 정동영 후보는 30일 “더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자숙’이라는 말이 함축하는 바는 분명해 보인다. 야권 분열로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안겼다는 비판의 소나기를 일단 견디고 있다가 다음 총선 등에서 재기를 노리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재보선에서 패하면 정치인생에서 ‘결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했던 유권자들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행보다.
이번 재보선을 통해 정 후보는 정치인으로서 역량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그는 정치판을 새롭게 구성할 힘도,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도 전혀 없었다. 아니, 정치판을 읽는 능력 자체가 기대 이하임이 입증됐다. 한때 여당 대선 후보까지 지냈던 사람이 지역구 선거에서 2등도 아닌 3등으로 밀린 초라한 현실이 이를 웅변한다. 정 후보의 섣부른 출마는 애초 탈당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신당 추진에까지 치명타를 안겼다. 그는 이미 신당 추진의 구심점은커녕 오히려 걸림돌이 될 처지로 전락했다. 그런데도 정 후보는 여전히 “야권 재편”이라는 공허한 주장을 되뇌고 있으니 쓴웃음만 나온다.
대선 패배 이후 정 후보가 걸어온 정치 행보는 패착의 연속이었다. 고향인 전북 전주 출마에서부터 이번 재보선에 이르기까지 그는 고비마다 잘못된 선택으로 명분도 실리도 계속 잃어버렸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집착과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일각에서는 그가 다음 총선에서 고향인 전주로 다시 내려가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한때 촉망받던 정치인의 끝없는 추락이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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