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을 만들어 배포한 시민을 경찰이 30일 구속했다.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라고 하나 앞뒤 맥락으로 볼 때 법 적용의 형평성과 타당성이 매우 의문스럽다. 권력 비판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과잉 수사임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시민 박성수(41)씨가 만들어 우편과 페이스북 등을 통해 돌린 전단에서 경찰이 문제삼은 대목은 “정모씨 염문을 덮으려고 공안정국 조성하는가?”라는 부분이다. 박씨는 앞의 제목을 붙이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문화체육관광부 모 과장이 청와대 실세 논란이 한참인 정모씨의 딸 특혜 의혹을 처벌해야 한다는 보고서 올리자 박근혜가 직접 경질 지시. 도대체 박근혜와 정모씨는 어떤 관계여서 이런 황당한 사건이?”
이런 내용을 두고 경찰은 박 대통령과 정윤회씨 염문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이를 전단에 넣어 배포하여 명예훼손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씨 관련 의혹은 박씨가 전단을 작성하기에 앞서 언론을 통해 널리 보도된 사안이다. 국회에서도 이 쟁점을 중심으로 질의응답이 공개적으로 진행됐다. 박씨가 독자적으로 의혹을 덧붙이거나 구체적으로 들춰낸 것도 전혀 없다. 이미 제기된 의혹 가운데 뼈대만을 추려 단순히 전달한 것에 불과한 박씨를 명예훼손으로 구속한다면, 그동안 이 문제를 거론했던 정치인과 언론도 그냥 둬선 안 된다. 박씨 구속이 형평성과 타당성이 없다는 얘기다.
얼마 전 박씨는 이 사건으로 대구 수성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와, 경찰서 앞에 개사료를 뿌렸다. 경찰서에 개껌을 우송하기도 했다. 개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과 같이 경찰 수사가 잘못돼 있음을 풍자하고 항의하는 의미에서였다고 한다. 경찰의 조처는 명예훼손보다는 개사료와 개껌을 보낸 것을 괘씸하게 여기고 박씨에게 본때를 보여주자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더욱 심각한 수사권 남용이다.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최고 권력자에 대한 비판은 폭넓게 허용하는 게 민주주의 사회의 상식이다. 대통령은 개인이라기보다는 국가기관으로 간주해 명예훼손도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게 옳다. 박씨는 폭력을 휘두른 것도 아니고 전단을 배포하거나 개사료, 개껌을 뿌리고 부친 게 고작이다. 이 정도 행동을 구속 수사로 다스리는 것은 군사권위주의 체제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가뜩이나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지적돼온 터에 더 잘못된 일이 벌어졌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