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그동안 못한 얘기를 다 하려는 듯 4·29 재보선과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 외교 현안 등에 대한 생각을 가감없이 쏟아냈다. 1주일간의 침묵이 조금이라도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하길 바랐던 건 너무 큰 기대였을까. 박 대통령 발언을 들으면서 자기 중심적인 사고는 변함이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박 대통령은 정치개혁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지난주 재보궐선거엔 과감한 정치개혁을 이루고 공무원연금 등 4대 개혁을 반드시 이뤄서 나라를 바로 세우라는 국민의 뜻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 정치에서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고리를 끊어야 한다. 검찰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에 대해 그 어떤 의혹이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전력을 다해 국민 뜻에 부응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과거부터 지속되어온 부정과 비리, 부패를 척결하는 정치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개혁을 바라는 마음을 굳이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진정 개혁을 이루려면 스스로의 과오에 먼저 칼을 대려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은 ‘개혁’을 말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은 언급하질 않는다. 누누이 말했지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성완종 사건)은 지방 건설업자인 성완종씨가 박 대통령의 과거 경선 및 대선 캠프에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게 핵심이다. 성완종씨가 돈을 건넸다는 정권 실세 8명의 혐의만 철저히 밝혀내도 우리 정치는 지금보다 몇 단계 깨끗해질 것이다. 이게 바로 ‘정치개혁’이다. 그런데 구체적인 수사대상은 언급하지 않고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개혁’만 얘기하니 그 진실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항상 추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건 아니다. 상대방에 대해선 집요하리만치 구체적으로 약점을 들춰낸다. 성완종씨 특별사면은 문제가 있긴 하나 이번 사건의 핵심은 아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대국민담화에서 성씨 특별사면에 대한 검찰 수사를 지시하는 듯한 발언을 한 데 이어 4일에도 또다시 대통령 특사의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했다. 남의 작은 허물은 콕 집어서 공격하고 자신의 큰 잘못은 모호한 화술로 감싸는 그의 언행은 정략적으로는 효과적일지 모르나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태도는 아니다. 박 대통령은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정권 실세들을 철저히 수사하는 게 정치개혁의 첩경이라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제 눈의 들보를 외면하곤 개혁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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