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식 통계로 잡히는 물가 수준이 몇 달째 바닥권을 맴돌고 있다. 지표상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에 머물다 보니 디플레이션 우려와 더불어 경기를 살리기 위해선 정부가 인위적으로 물가를 끌어올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마저 심심찮게 나온다. 하지만 소득 수준이 낮은 계층일수록 피부로 느끼는 물가 부담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정책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계층별 경제상황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수치만 놓고 본다면 물가 상승 압력은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4%로, 4개월째 0%대에 머물고 있다. 특히 담뱃값 인상 효과를 빼면 사실상 두달째 마이너스 물가 상태다. 하지만 통계청이 다달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체 지출액 중 품목별 단순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작성하는 탓에, 지출 규모가 큰 고소득층의 물가 수준이 과도하게 반영되는 착시효과를 낳기 마련이다. 실제로 <한겨레>가 통계청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저소득층의 물가 부담은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 새 교통비나 여행비, 오락 및 문화지출 등 고소득층이 주로 구매하는 품목의 물가는 떨어지거나 안정된 데 반해, 채소류나 집세 등 저소득층의 지출 비중이 높은 대표 품목의 물가는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내수 부진의 여파로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정작 서민들은 그나마 물가 안정이라는 혜택마저도 누리지 못하는 셈이다.
특히 고삐 풀린 전셋값 고공 행진이 좀체 멈추지 않아 서민들의 삶을 더욱 옥죄고 있는 현실은 매우 우려스럽다. 주거비는 소득수준이 낮은 계층일수록 부담을 더 크게 느끼기 마련이다. 이런 가운데 매맷값에 견준 전셋값 비율을 나타내는 전세가율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달 서울 25개 구 가운데 11개 구의 전세가율이 70%를 넘었고, 14개 강북권 평균 전세가율도 사상 처음으로 70%대를 돌파했다. 전셋값 상승은 당장 서민들의 생활형편을 쪼들리게 할 뿐 아니라 부담을 떠안고서라도 집을 사려는 수요를 자극해 가계부채를 증가시키고, 다시 줄어든 가처분소득이 소비를 줄여 경제를 더욱 침체에 빠뜨리는 악순환의 기폭제 구실을 할 가능성이 크다.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특효처방은 없겠으나, 더 늦기 전에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 등 과감한 재분배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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