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지사가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처음으로 8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다. 검찰 특별수사팀이 발족한 지 거의 한달 만이니 빠른 속도는 아니다. 이제야 의혹 대상자 수사가 본격화한 만큼, 검찰은 더는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검찰은 홍 지사의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고 한다. 홍 지사에게 1억원을 줬다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메모와 숨지기 직전의 전화 인터뷰, 돈을 전달했다는 윤아무개 전 경남기업 부사장의 일관된 진술, 주변 인사들의 증언과 정황 등을 종합하면 증거는 이미 충분하다고 할 만하다. 홍 지사가 검사 시절 말한 대로 물증을 찾기 힘든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선 이 정도면 그리 어렵지도 않은 사건이겠다. 그런데도 홍 지사는 몇 차례나 말을 바꾸고 이런저런 법논리를 들이대며 성 전 회장과 윤씨의 말을 부정했다. 보기에도 딱한 좌충우돌이다.
이제는 홍 지사 자신이 윤씨를 회유하는 데 개입한 정황까지 나왔다. 검찰은 홍 지사의 측근인 엄아무개씨가 지난달 중순 윤씨와 통화하면서 “홍 지사의 부탁을 받고 전화했다”며 홍 지사가 아니라 보좌관 나아무개씨한테 돈을 준 것으로 진술하면 안 되겠느냐고 말하는 내용의 통화 녹음 파일을 확보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명백한 증거인멸 시도다. 이를 그냥 둔다면 진실 왜곡을 눈감고 부추기는 게 된다.
대가나 꼬리표가 붙지 않은 돈은 없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홍 지사에게 1억원이 전달된 것은 2011년 6월이라고 한다. 홍 지사는 그 직후인 그해 7월4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2012년 총선 공천권을 쥔 당 대표에 당선됐다. 성 전 회장이 경선자금이 급했을 홍 지사에게 돈을 주면서 공천을 기대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돈이 필요했던 것은 홍 지사만은 아닐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에는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도 있고,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선거운동본부에서 핵심 본부장을 맡았던 인사도 3명 있다. 성 전 회장 메모 외에 ‘대선 직전 2억원을 마련해 새누리당 선대위 관계자에게 전달했다’는 경남기업 전직 간부의 진술까지 있다. 의지만 있다면 수사의 단서와 범죄 동기, 대가성은 충분하다. 검찰 수사는 불법 대선자금 의혹까지 멈춤 없이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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