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11일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와 관련해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 문구를 명시하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정했다. 이런 새누리당 태도는 여야 합의를 깨는 것일 뿐더러 청와대의 압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의 5월 임시국회 처리도 물건너갈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청와대 한마디에 놀라 어렵사리 마련한 사회적 대타협을 위태롭게 하는 건지 한심스럴 따름이다.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조항은 2일 여야 정치권과 공무원단체 등이 서로 합의한 것이다. 그때 작성된 실무합의문엔 이 조항이 분명히 들어 있고, 여야 대표는 ‘실무기구 합의문을 존중한다’는 표현으로 그 내용을 승인했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새누리당 지도부가 ‘50% 부분은 합의문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행동이다. 차라리 “청와대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 ‘용기 없다’는 말은 들어도 ‘비겁하다’는 얘기는 듣지 않을 것이다. 권위주의 시절처럼 여당에 협상 지침을 내리는 청와대도 문제지만, 이걸 고분고분 따르는 새누리당은 ‘청와대 2중대’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청와대가 ‘세금 폭탄’이니 ‘미래세대 재앙’이니 하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쓰면서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 조항을 담은 국회 합의를 맹비난하는 이유는 기실 따로 있다. 청와대는 처음부터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 내용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여기에 공무원연금 개혁이 국민연금 개혁 논의의 본격화로 이어지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내부에서 ‘쌀 한 말 절약하려다 곳간 털리게 생겼다’는 말이 나온다는데, 이 말만큼이나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현 정권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도 없을 듯싶다.
문제는 ‘국민연금’이란 곳간을 그대로 둔다고 지켜질 수 있는 게 아니란 점이다. 국민연금 재정도 재정이려니와, 급속한 노령화와 함께 노인빈곤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게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이다. 이에 대비해 공적연금의 안정성과 유효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찾는 일은 더 미룰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에 여야 정치권이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만들면서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사회적기구’ 설립에 합의했던 것이다. 청와대가 ‘50%’라는 숫자를 빌미로 이런 합의를 무력화시키려는 건 결국 공적연금 개혁 논의를 회피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여야와 공무원단체 등이 긴 논의 끝에 어렵사리 합의한 ‘사회적 대타협’의 산물이다. 새누리당은 청와대 압력에 못 이겨 기존의 여야 합의를 정면으로 깨는 전제조건을 달아선 안 된다. 그래야 야당도 유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가 아닌 국민을 보고 나아가는 정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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