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3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2015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다. 내년도 예산안 편성 방향을 포함해 앞으로 5년간 나라살림을 어떻게 꾸려나가는 게 바람직한지 밑그림을 그리는 자리다.
이 회의에서 오간 얘기 가운데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방안이 단연 눈길을 끈다. 정부는 만 3~5살 아동을 대상으로 한 무상보육·교육 서비스인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지출경비’로 지정하고, 각 지방교육청별로 편성 결과를 공개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정부는 누리과정 사업에 들어가는 돈을 더는 대줄 수 없으니 교육청이 알아서 관련 재원을 확보하라는 최후통첩이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교육청은 이듬해 지방재정교부금 지원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정부의 이런 구상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 후보가 10대 복지공약의 하나로 내세운 누리과정 공약을 스스로 내팽개치는 행태다. 대선 당시 박 후보는 ‘0~5살 보육 및 교육은 국가가 완전 책임진다’고 거듭 공언했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가을 2015년 예산안을 짜는 과정에서 누리과정 예산 2조2000억원을 전액 삭감했다가, 반발이 거세자 일부만 목적예비비로 지원하기로 한발 물러선 적도 있다. 올해 들어서만 해도 강원·전북 등 여러 지자체에서 예산 부족으로 누리과정 사업이 차질을 빚는 일이 속출했다.
약속한 돈은 지원받지 못하면서 예산은 꼭 편성해야 하는 교육청으로선 무척 난감한 처지가 됐다. 이 때문에 약속은 대통령이 하고 책임은 교육청에 떠넘긴다며 교육청마다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러다간 고육지책으로 다른 용도로 책정된 예산을 끌어다 ‘돌려막기’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진보 교육감의 대표 공약인 무상급식 정책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나라살림을 책임지는 정부가 나랏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씀씀이를 철저히 가려내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정부가 내비친 구상은 세입을 확대하려는 노력은 않고 무작정 씀씀이부터 줄이고 보겠다는 식의, 근본 대책과는 거리가 먼 땜질처방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가 감세정책을 밀어붙인 이래 국내 세수 기반은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다 바닥으로 떨어진 경기마저 되살아나지 못하면서 지난 3년 동안 예산보다 덜 걷힌 세수만 22조2000억원에 이른다. 총세입 증가율은 경제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데도 정부는 증세 등 세수 기반을 근본적으로 확충하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2013년 개편한 소득세제마저 여론과 정치권에 떠밀려 소급적용하고 보완하는 데 급급한 실정이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앞으로 복지수요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손쉬운 지출 구조조정에나 매달릴 것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나라살림 운영의 근본 기조를 확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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