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혁 합의안에 담긴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를 둘러싼 여야 대치 정국이 길어지고 있다. 원내대표 주례회동마저 끊어질 만큼 여야 사이에 골이 깊게 파였다. 사태가 이런 지경까지 온 데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파기한 청와대와 여당의 책임이 크다. 특히 ‘월권’, ‘세금폭탄론’ 운운하며 여야 합의를 무시한 청와대의 태도가 결정적이다.
그러나 이들 연금 개혁을 무작정 미룰 수도 없다. 여야는 이달 초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 과정에서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사회적 기구) 구성에 뜻을 함께했다. 공적연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현행 국민연금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모처럼 형성됐는데도 정치적인 힘겨루기에 밀려 기회를 날리는 것은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꼴이다.
국민연금 개혁 방향에 대해선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이해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보장 정도(급여)와 부담 규모(보험료율) 사이에 이중적 인식도 엿보인다. 연금 사각지대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웃도는 상황에서, 이들에겐 국민연금 개혁 논의 자체가 ‘남의 일’처럼 여겨질 수 있다. 안정적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 세대의 불신감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본디 세대협약의 성격이 강하다. 서구 나라들이 몇 세대에 걸쳐 제도를 운영하면서 쌓인 신뢰를 자양분 삼아 개혁 논의를 진행해온 데 반해, 우리는 채 신뢰가 쌓이기도 전에 개혁 작업에 나서야 하는 처지다. 그만큼 목소리도 제각각이고 해답을 찾기가 지난하다. 그러나 머리를 맞대면 길은 있기 마련이다. 소득대체율 일괄 인상 이외에도 저소득층 기초연금 강화나 계층간 보험료율 차등화 등 다층적 해법이 얼마든지 열려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중요한 게 사회적 합의 과정이다.
여야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연금 개혁 논의의 불씨를 되살려야 한다. 이미 합의한 사회적 기구부터 출범시키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작고 쉬운 것부터 합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양한 변수의 장기추계치를 반영하는 국민연금 모형은 극소수 전문가가 아니면 알기 힘들다. 여야가 서로 엇갈리는 데이터의 객관성부터 공동으로 검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한겨레>가 창간 27돌을 맞아 진행한 국민 설문조사에서 ‘국민연금 보장 수준과 적정 보험료 논의를 위한 사회적 기구의 필요성’에 대해 응답자의 84.2%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여야는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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