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주요 현안이 된 지는 꽤 됐다. 그런데도 이를 풀어갈 실효성 있는 방안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한편에서는 문제를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 불안을 조성하는 게 아니냐는 반응조차 나온다. 하지만 최근의 급증세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추세 자체가 예사롭게 보아 넘기기 어려워서다.
한국은행이 14일 내놓은 ‘4월중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지난달 말 가계가 은행에서 빌린 돈의 잔액은 모두 579조1000억원으로 한달 전에 견줘 8조5000억원이나 늘어났다.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8년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 주택담보대출로 늘어난 게 8조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대출규제가 완화되고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대출금리가 하락한데다, 매매를 중심으로 주택거래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런 은행 대출에다 다른 대출까지 더하면 가계부채는 이미 1100조원 가까이 이른다. 천문학적 규모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4월 동향에서 긍정적인 면이 전혀 없지는 않다. 부동산시장에 봄볕이 드는 낌새가 보이고, 제2금융권의 대출이 좀더 안정적인 은행권으로 전환되는 양상이 그것이다. 이는 애초 정부가 의도했던 대목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면을 덮기에는 힘이 크게 달린다. 앞서 얘기한 대로 증가세가 너무 가파르다. 은행에서 풀린 돈이 부동산시장으로 몰리면서 자칫 거품을 키울 수 있다. 정부 쪽에서는 현재 부동산 거래가 실수요자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는 듯하지만 이게 언제 투기성 거래로 바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부채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은 좀체 개선되지 않고 있다.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지난해 164.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 해 전에 견줘 3.9%포인트나 증가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치가 133.5% 수준임을 고려할 때 매우 높다. 또한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뒤 원금은 갚지 못한 채 이자만 내는 가구가 190만이나 된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 만큼 새로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계부채 증가율을 억제하는 것이 기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해 대폭 완화한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높이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한 취약계층 대상의 ‘서민금융지원 방안’도 충실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부동산에 기대어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발상의 위험을 직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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