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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신종 금지곡이 된 ‘임을 위한 행진곡’

등록 2015-05-15 18:35

국가보훈처가 정부 주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국민통합을 저해한다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하지 않기로 했다. 광주시민들이 주도하는 5·18 민중항쟁 기념사업위원회는 이에 항의해 정부 주관 기념행사 불참과 보훈처 예산 지원 거부를 선언했다. 보훈처의 졸렬한 처사로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기리는 행사에 이런 갈등이 이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항쟁 당시 계엄군에 피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노래로서 백기완씨가 쓴 시를 바탕으로 소설가 황석영이 작사를 했다. ‘동지는 간데없고 산 자가 그 뜻을 따른다’는 가사처럼, 민주화를 위해 숨진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며 뜻을 계승하겠다는 시민의 도의적 채무감을 담은 노래다. 많은 시민이 광주항쟁을 기억하며 이 노래를 함께 불렀고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뒤에는 정부 주관 기념행사에서도 제창 순서를 넣었던 적이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5·18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재확인하는 의례로 자리잡아왔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까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꺼리는 배경은 짐작된다. 전두환의 폭력적인 정권탈취에 맞서 투쟁한 5·18 민주화운동에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5·18은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화운동의 기념비적 사건으로 역사적 평가가 이뤄져 있다. 관련 기록물이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를 만큼 국제적으로도 공인받은 민주화운동이다. 박근혜 정부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에 뿌리를 둔 것으로 자임하지 않는다면, 5·18과 관련한 역사적 합의를 함부로 부정해선 안 된다.

보훈처는 이 노래가 1991년 남쪽의 황석영과 북쪽의 리춘구가 공동집필하여 만든 북한의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면서 부적절성을 제기한다. 그때의 님이 북한의 김일성 아니냐는 일부 보수단체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훨씬 전인 1982년에 만들어졌다. 2004년 기념식 때는 노무현 대통령과 당시 제1야당 대표였던 박근혜 의원이 함께 제창했다. 이들이 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노래를 불렀다고 생각하는 건가. 4월 정의화 국회의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임은 광주정신이며 5·18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보훈처는 터무니없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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