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반역죄로 공개처형됐다는 국정원 발표가 정확성이나 시기의 적정성 등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런 의문은 일차적으로는 현 부장의 모습이 계속 북한의 텔레비전 등에 나오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숙청된 인물의 이름과 모습이 공식 기록과 언론매체에서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점에 비춰보면 매우 이례적이다. 물론 이를 두고 현 부장 처형설이 근거가 없다고 곧바로 결론지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국정원 발표는 너무 성급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국정원은 현 부장 처형설을 발표하면서 ‘첩보’ 단계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다. 하지만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아직 확인·검증을 거치지 않은 첩보 내용을 그렇게 서둘러 발표한 것부터 매우 경솔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국정원은 ‘고사포 공개처형’ ‘화염방사기 뒤처리’ 등 처형의 정황까지 자세히 묘사했다. 만에 하나 발표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경우 국제적 창피 등 후폭풍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과연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이런 위험한 ‘도박’을 해도 좋은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게다가 국정원 발표를 대서특필하는 것이 우리나라 대다수 언론의 풍토임은 국정원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첩보라는 말 한마디가 경솔함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결코 없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내부의 극도의 공포정치가 알려지면서 많은 국민이 경악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과연 적절한지도 의문이다. 박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현 부장의 ‘고사포 처형설’ 등을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으로 여겨진다. 국정원이 첩보 수준이라고 발표한 것을 대통령이 기정사실로 못박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남쪽의 최고지도자가 북한 지도부를 이런 식으로 공개 비난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도 의문이다.
국정원이 현 부장 처형설을 발표한 시기는 공교롭게도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기지개를 켜고 있는 시점이다. 통일부는 그동안 중단됐던 북한과의 사회·문화 교류 및 인도적 지원 사업을 허용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한 노력을 재개했다. 국정원의 발표는 결과적으로 정부의 이런 노력에 어깃장을 놓은 셈이 됐다. 남북문제를 놓고 정부 부처 간에 손발이 맞지 않는 일면이 또 드러난 것이다.
정보기관은 정보를 생산하되 활용에는 극히 엄격해야 하는데도 국정원은 이번에 정보도 아닌 첩보를 가지고 ‘언론플레이’를 했다. 이병호 신임 국정원장 체제가 첫걸음부터 그릇된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아 매우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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