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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박용성표 중앙대’의 총체적 파탄

등록 2015-05-20 18:29수정 2015-05-20 22:37

박용성 전 중앙대 재단 이사장이 재직 시절 ‘남학생 우대 선발’을 지시했다는 의혹은 충격 그 자체다. 양성평등 원칙에 대한 노골적인 도발일 뿐만 아니라 대입의 공정성을 근간부터 흔드는 불법행위이기 때문이다. 전해지는 박 전 이사장의 발언 내용은 말문을 막히게 한다. ‘분 바르는 여학생들 잔뜩 입학하면 뭐하느냐’는 전근대적인 성차별 의식에 ‘졸업 뒤 학교에 기부금도 내고 재단에 도움이 될 남학생들을 뽑으라’는 황금만능주의식 계산법이 뒤섞인 기괴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는 그동안 하나둘 드러나던 ‘두산그룹 인수 뒤 중앙대’의 비뚤어진 모습 가운데 정점을 찍는 사태라고 할 만하다. 중앙대 총장 출신인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교육부에 압력을 넣어 중앙대의 숙원사업을 해결해주는 대가로 두산그룹 쪽으로부터 상가 특혜 분양을 받고, 총장 재직 때 기부금 수십억원을 학교에 쓰지 않고 재단으로 돌린 혐의로 얼마 전 구속됐다. 부패한 기업 운영의 구태가 대학에 그대로 이식된 꼴이다. 중앙대는 ‘순수학문을 고사시킨다’는 비판 속에서도 학과제 폐지 등 대학 구조조정을 앞장서 추진했다. 이 또한 기업 논리를 막무가내로 대학에 들이댄 패착이었다. 이 과정에서 ‘반대하는 교수들의 목을 치겠다’고 막말을 했던 재단 이사장이 급기야 대학 입시의 공정성마저 왜곡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기업이 대학에 투자해 고등교육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명분 아래 진행됐던 두산그룹 체제의 중앙대 실험은 이로써 총체적 파탄을 맞았다. 대학에 기업 논리를 주입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음이 입증된 셈이다. 끊임없이 이익을 창출하려 드는 기업의 생리는 대학 운영마저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기업인 출신에게 대학을 이끌 만한 자질과 안목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대학과 산업의 유기적 결합이 아무리 요구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기업이 주도하다가는 대학과 학문을 파멸의 길로 몰아넣게 된다는 중대한 교훈을 남긴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는 국가권력은 물론 재단의 전횡으로부터도 보호돼야 한다. 두산그룹은 앞으로 중앙대에 대해 순수한 지원 이외에는 어떤 개입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내놓아야 한다. 중앙대 이외에도 상지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이 부패 재단과 시장 논리에 의해 자율성·공공성을 훼손당하고 있다. 탐욕이 대학을 지배하는 이 고리를 끊지 않고서는 진정한 학문의 발전, 지식 경쟁력 확보는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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