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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스마트폰 통째 보겠다는 ‘경찰국가’ 발상

등록 2015-05-25 18:43

경찰이 개인의 스마트폰 속 내용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가을부터 전국 일선 경찰서에 보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범죄 피해자·목격자·신고자의 동의가 있으면 압수수색영장 없이도 당사자의 스마트폰에 담긴 온갖 정보를 바로 검색·추출·인쇄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인은 생활의 대부분을 스마트폰과 함께한다. 그런 사생활 하나하나를 경찰이 언제든 쉽게 들춰볼 수 있게 되면 통신비밀과 사생활의 자유는 금세 허물어진다. ‘빅브러더’가 감시·지배하는 ‘경찰국가’의 모습과 다름없다.

경찰은 신속한 수사의 필요성과 당사자의 편의를 앞세우고 있다고 한다. 지금처럼 절차대로 처리하거나 장비가 있는 지방경찰청에 분석을 의뢰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당사자도 불편하다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핑계다. 이런 억지를 수긍하기엔 예상되는 부작용과 침해될 헌법적 권리가 크고 중대하다.

스마트폰 분석 작업을 할 때는 필요한 정보만 빼내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안에 든 모든 정보를 경찰 컴퓨터에 복사한 뒤 다시 분류해 찾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통화내역, 사진, 동영상, 문서파일 등은 물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의 대화 내용까지 통째로 경찰이 확보해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당장은 범죄 피해자나 목격자 등에 한정하겠다지만, 경찰이 프로그램 적용 대상을 함부로 확대할 위험은 언제라도 있다. 일선 경찰관서의 압박적 수사 환경과 관행에선 법률지식이 부족한 사람 등에게 동의를 강요하며 마구잡이로 프로그램을 들이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곳곳에서 벌어질 그런 수사권 오·남용을 모두 감시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니, 인권 침해와 개인정보 누설은 막을 길이 없다. 나아가 그런 정보들이 저장되고 누적되면 악용의 위험성과 그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다.

경찰의 계획은 원칙에도 어긋난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통신비밀의 보호는 헌법에 명시된 권리다. 통신비밀보호법 등은 통신·대화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제한은 제한적으로, 엄격한 법적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국가기관이 개인 휴대전화에 든 정보에 접근하려 한다면 영장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런 원칙의 당연한 결론이다. 그런 법적 통제장치 없이 일선 경찰이 임의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그렇게 얻은 증거가 법정에서 제대로 인정받을지도 의문이다. 경찰은 무리한 계획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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