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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사법부 독립성 훼손한 국정원의 판사 면접

등록 2015-05-27 18:50수정 2015-05-27 18:50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2013~14년 경력법관 채용에 지원한 이들을 직접 만나 ‘면접’을 봤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국정원과 대법원은 ‘보안업무규정’에 근거해 신원조사를 한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헌법정신을 능멸하는 궤변에 불과하다.

신원조사는 주요 공직에 임용될 이들을 대상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심·성실성·신뢰성을 확인하는 절차로 규정돼 있다. 그런데 국정원 직원들은 경력법관 지원자들에게 세월호 사건을 비롯한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의견을 캐물었다고 한다. 신원조사의 취지와는 동떨어진 일로, 사실상 사상검증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법관 임용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 셈이다.

정보기관이 공무원 임용 예정자의 국가관을 조사하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처진 폐습이다. 보안업무규정은 정보기관이 무소불위의 통치 수단으로 활용되던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 충성심 같은 내심의 영역을 검증하겠다는 발상부터가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전체주의적 사고에 근거한다.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건 애초 가능하지도 않다. 결국 국가관을 살핀다는 미명 아래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인물을 찍어내는 장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물론 공무원으로서 결격 사유가 있는지 따져보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범죄나 탈세 등 객관적 사실 위주로 정상적인 심사 절차를 통해 검증하면 된다. 정보기관이 은밀히 나설 이유가 없다.

사실상 요식행위에 그쳤던 법관 신원조사가 하필 2013년에 면접이란 형태로 강화된 것도 고약한 일이다. 당시는 현 정부의 정통성 문제와 직결되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던 시점이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사법부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정치 관여에 나섰다. 대선 개입 사건 재판을 앞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국정원이 법관 임용 과정에 개입한다면 사법부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국정원 직원한테 면접을 보고 선발된 판사의 재판을 국민이 신뢰할 리도 만무하다. 사법 불신이 더 번지는 것을 막으려면 대법원은 지금이라도 국정원의 신원조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됐고 선발 결과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재발 방지를 위한 조처도 내놔야 한다. 공무원 신원조사에 국정원이 개입할 여지를 없애고 조사 내용·방식·주체 등을 법률로 명확히 규정하는 법령 정비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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