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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25년 지켜온 ‘광화문 글판’의 잔잔한 감동

등록 2015-05-27 18:50

서울 광화문 네거리 교보생명 사옥의 ‘광화문 글판’이 운영된 지 25년을 맞았다. 교보생명은 26일 글판과 인연을 맺은 작가와 학자, 시민을 초청해 작은 콘서트를 열었다. 광화문 글판은 사람이 아닌데도 2007년 환경재단에서 뽑은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들었다. 2008년에는 한글문화연대의 ‘우리말 사랑꾼’에 선정되기도 했다. 기업체 건물 외벽에 적은 글귀와 글판이 세상 속에서 공공 문화 콘텐츠로서 의미를 획득해온 과정이 여간 흥미롭지 않다.

1980년대 말 광화문 글판에는 ‘근하신년’, ‘고객 여러분 감사합니다’와 같은 일반적인 글귀가 걸렸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91년 신용호 교보생명 전 명예회장의 지시로 조금 성격이 다른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는 글귀가 걸렸다. 이어 도전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글귀들을 잇달아 걸면서 글판이 의미를 넓혀가게 되었다고 한다. 기업체 사옥 외벽은 기업 홍보를 위해 사유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게 보통이다. 시민들에게 무언가 보탬이 되는 쪽으로 외벽을 활용하겠다고 나선 마음씨에서 넉넉함과 신선함이 느껴진다.

글판의 글귀는 힘든 사람들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내용이 많았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뒤인 지난해 5월에는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정호승, 풍경달다)가 걸렸다. 실종자들의 귀환을 갈망하는 가족의 마음을 헤아린 듯해 보기 좋았다. 외환위기로 사람들이 실의에 빠졌을 때는 고은 시인한테 일부러 요청해, ‘모여서 숲이 된다/ 나무 하나하나 죽이지 않고 숲이 된다/ 그 숲의 시절로 우리는 간다’는 글을 받아 걸었다고 한다. 2004년에는 방황하던 한 제대 청년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라는 시구절을 읽고 진로를 잡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문화는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킬 때 강한 힘을 발휘한다. 광화문 글판에는 시를 많이 걸었지만 때로 힙합곡의 일부 가사도 걸었다. 3·1절 무렵에 일본의 단시인 하이쿠를 내건 적도 있다. 교보생명 쪽은 분기마다 일반인이 응모하는 300~400편 가운데 5편, 문안선정위원들이 준비한 5편, 총 10편 가운데 내걸 글귀를 최종 선정한다고 한다. 지난 25년 동안 쉬지 앉고 시민을 위로·격려해준 글판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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