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조 등의 동의 없이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는 길을 터주려 하고 있다. 노동시장 구조 개편을 위한 사회적 대화가 기약 없이 중단된 상태에서, 정부가 대화의 물꼬를 다시 트려 하기보다 밀어붙이기에만 매달리고 있어 우려스럽다.
내년 300인 이상 사업장의 정년 연장(60살)에 맞춰, 현행 임금체계를 서둘러 손질해야 한다고 정부는 생각하고 있다. 그 뼈대는 27일 정부가 공개한 ‘취업규칙 변경의 합리적 기준과 절차’라는 토론회 발제문에 담겨 있다. 정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취업규칙 변경을 위한 노동자의 동의가 없어도 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를 들어, 노조 등의 동의가 임금피크제 도입의 전제요건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정년 60세법’의 입법 취지, 정년 연장에 따른 기업의 재정·인력채용 부담 등을 고려할 때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체계를 개편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게 정부가 든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근거다.
정부의 처지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책임의 뿌리를 따지자면, 법으로 정년만 늘려놓고 그에 따르는 임금체계 개편 등 난제는 ‘사후 과제’로 떠넘겨버린 정치권의 탓도 크다. 당장 내년부터 정년이 늘어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진다. 기업이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신규 채용 감소로 벌충하려 들 경우, 가뜩이나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더 악화시킬 우려도 크다. 따라서 정년 연장에 발맞춰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의 합리적 개편 논의를 무작정 회피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사회통념상 합리성만을 내세워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밀어붙이려는 정부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찌됐건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면 누군가는 임금이 깎일 수밖에 없다. 현재보다는 생활 형편이 나빠지는 것이다. 임금피크제의 실효성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고용 안정이나 청년실업 해소에 보탬이 되리라는 확실한 보장도 없다. 대부분의 민간기업에서 법정 정년을 채우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 아닌가. 결국 일부 공공기관을 빼고는, 기업의 비용 부담만 줄여주는 데 그칠 소지가 크다.
정부는 지난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사가 큰 틀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에 ‘합의’했다고 주장하나 이는 어불성설이다. 임금피크제의 구체적 효과를 둘러싼 이견들이 결국 사회적 대화 최종 결렬의 실마리가 됐다. 이제라도 정부는 바람직한 세부 실행방안을 놓고 사회적 대화의 끈을 이어가야 한다. 밀어붙이기식 강행은 되레 노사 분쟁의 불씨만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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