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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14년이나 걸린 용산 미군기지 오염조사

등록 2015-05-31 21:07

2001년 발생한 서울 녹사평역 지하수 기름오염 사건과 관련해, 오염원을 찾기 위한 용산 미군기지내 시료 채취가 26~29일 이뤄졌다고 한다. 환경부와 서울시는 전문가 5명을 들여보내 용산 미군기지 내부의 지하수 관정 32곳 중 18곳의 시료를 채취해 정밀검사에 들어갔다. 수도 서울의 도심에서 지하수 오염이 일어났는데, 오염원을 밝히기 위한 시료 채취에만 14년이 걸리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금 한-미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이번 사건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5월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부근 지하수에서 벤젠 등 석유물질이 대량 검출됐다. 미군이 사용하는 제트유로 추정돼 한·미 두 나라가 용산 미군기지내 일부 시료를 검사했지만 오염원을 분명하게 밝히진 못했다. 그렇게 14년이 흘러 녹사평역 주변의 오염 대지는 3700여평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녹사평역 부근 지하수의 벤젠·톨루엔 등의 검출치는 최대 4천배까지 기준치를 넘었다. 서울시는 여러 차례 기지 내부 조사를 요청했지만, 주한미군은 ‘환경 양해각서’를 근거로 협조하지 않았다.

14년간 오염 면적이 3700평이라면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나마 이 정도인 건, 서울시가 미군기지 주변에 관측정과 정화시설을 설치하고 지속적으로 정화작업을 벌여왔던 덕분이다. 하지만 오염원을 그대로 둔 채 주변만 정화하는 건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 이번 미군기지 시료 채취가 의미 있는 건, 오염원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은 영 개운치가 않다. 서울시민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미군 당국과 이를 용인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제2, 제3의 시료채취 거부와 같은 일은 언제라도 되풀이될 수 있다.

최근 주한미군이 우리 정부 몰래 ‘살아있는 탄저균’ 실험을 한 것이나, 14년간 미군기지내의 오염원 조사를 거부한 것이나 밑바닥에 깔린 인식은 다르지 않다. 두 사건을 보면서, 미국은 동맹국으로서 과연 한국민의 생명과 건강권을 존중하고 있는가 그리고 한국 정부는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환경과 안전 문제에 관한 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소파)의 불합리한 조항은 지금이라도 당장 개정 작업에 나서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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