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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제왕적 대통령’이 삼권분립 걱정이라니

등록 2015-05-31 21:07수정 2015-05-31 21:07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 통제를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청와대가 “삼권분립 위반”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입법부 독재’니 ‘무소불위 국회’니 ‘식물 정부’니 하는 말까지 난무하고 있다. 새 국회법이 시행되면 가뜩이나 힘없는 행정부가 더욱 무력화되는 위험한 상황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야단법석이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위헌 주장도 별로 설득력이 없지만, 이런 법리 논쟁과는 별개로 ‘허상의 현실’을 그려놓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모습은 더욱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된 것이 우리나라 권력구조의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제왕적 대통령이니, 거수기로 전락한 의회니 하는 말이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삼권분립 문제에 관한 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형편이다. 현직 국회의원을 대통령의 개인 참모에 불과한 정무특보로 버젓이 임명하는가 하면, 대법원 판결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통상임금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평소 국회와 사법부는 안중에도 없던 박 대통령이 이제 와서 삼권분립을 거론하는 것부터 쓴웃음을 짓게 한다.

‘식물 정부’라는 말도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기우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나라는 입법·사법에 비해 행정권이 월등히 막강한 전형적인 개발도상국형 현대행정국가에 속한다. 사회 전반의 전문화·다원화 추세 속에 행정국가화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으면 입법부의 기능은 상대적으로 더 약해지고 있다. 지금은 ‘식물 행정부’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행정부의 월권과 일탈행위를 바로잡을 때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잘 요약 정리했듯이 위헌과는 거리가 멀다. 시행령 수정 요구가 있다고 해도 시행령의 법적 효력을 정지시키는 것은 아니며, 정부는 시정요구에 따르지 않고 권한쟁의 심판 청구 등 다양한 대응을 할 수도 있다. 어느 면에서 보면 이번 국회법 개정은 입법부 독재가 아니라 이제야 국회가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제 역할을 찾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청와대 눈치만을 살펴온 여당이 독자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이를 두고 ‘국가적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당청관계가 삐걱거려서야 되겠느냐’ 하는 따위의 수준 낮은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기형적 당청관계를 정상화시키고 대통령과 행정부에 과도하게 쏠린 힘의 균형을 바로잡는 매우 의미 있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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