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가 2일 여수에서 문을 열었다. 전국을 통틀어 12번째다. 세종시를 포함한 17개 시·도에 창조경제혁신센터 17곳을 세운다는 게 정부 목표인데, 이제 서울·인천·세종·울산·제주 등 5곳이 남았다.
창조경제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분야 국정철학이 집약된 용어다. 창조경제의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자, 정부는 대기업에 치우친 경제구조를 혁신해 중소벤처기업 육성의 싹을 틔우는 것이란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지역별 창조경제혁신센터 설립을 대-중소기업 상생의 토양으로 삼고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기업이 지역 특성에 맞게 투자계획을 내놓는 것을 나무랄 일은 못 된다. 가뜩이나 기업들이 투자에 몸을 사리는 판에, 정부가 투자를 유도하려 애쓰는 모습을 무턱대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정부의 행태를 보면 창조경제를 마치 정해진 계획에 따라 작전을 하듯 밀어붙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창조경제란 이름과는 거리가 먼 전시행정의 본보기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업 진행 방식에도 무리가 많다. 지난해 9월 대구(삼성)를 시작으로 대전(SK), 광주(현대차), 충북(LG), 부산(롯데), 충남(한화), 전남(GS) 등 하나같이 대기업에 정부가 연고지역을 사실상 ‘할당’한 꼴이다. 개소식에 맞춰 해당 대기업이 장밋빛 투자계획을 쏟아내고, 이에 화답하듯 대통령은 재벌 총수를 격려하는 모습이 되풀이된다.
이러다 보니 심심찮게 잡음이 들린다. 오래전 결정된 투자계획을 창조경제로 포장해 신상품인 양 내놓는 사례도 있다. 투자규모를 놓고 청와대와 ‘사전조율’을 하다 이견이 생겨 일정이 밀렸다는 얘기도 있다. 이달 말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의 ‘주인공’을 맡아야 할 현대중공업만 해도 난감한 처지다. 지난해 3조원 넘는 적자를 기록해 대규모 구조조정까지 단행한 마당에 섣불리 투자계획을 내놓기 곤란해서다.
대기업의 경험과 기술, 자금이 지역경제를 살찌우는 밑천으로 쓰이는 건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정부가 대기업에 지역을 강제로 할당하고, 기업들이 마지못해 돈보따리를 풀어놓는 현재 방식은 옳지도 않고 지역경제에 큰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지역의 중소벤처기업을 살리는 지름길은 인적자원 개발에서 사업평가·투자에 이르기까지 지역 산업생태계 전반을 끌어올리는 일뿐이다. 1970~80년대 권위주의 정권이 대기업에 체육단체 하나씩 떠안기듯 해서야 어찌 창조경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름에 어울리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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