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 확산 추세가 이어지고 국민의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소극적 대처만 반복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원점으로 돌아가 잇따른 실책의 원인을 성찰하고 기본부터 재점검해야만 사태 악화를 막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정보 공개 문제다.
환자가 발생한 병원·지역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지만 정부는 4일에도 불가 방침을 재확인했다. 불안감과 혼란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메르스에 대비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응답이 82.6%에 이른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듯이 정보 부재는 오히려 광범위한 불안감의 주요 원인이다. 메르스 환자들이 거쳐간 병원들을 알려준다는 웹사이트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정부가 그리도 걱정하는 괴담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신력 있는 정보의 제공이 시급하다.
정확한 정보의 전파는 메르스 확산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된다. 첫 번째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직후 그가 거쳐온 병원들을 공개하고 밀접 접촉자들의 감염 가능성을 제대로 알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와 같은 병실·병동을 쓰다 퇴원한 환자들이 스스로 보건당국에 신고했을 수 있다. 이들이 다른 병원에 입원하거나 일상생활을 하면서 3차 감염을 일으킬 확률도 줄었을 것이다. 정부는 쉬쉬하며 이들을 추적 조사했지만 상당 부분 격리에 실패했고 3차 감염이 현실화했다. 제대로 대처할 능력도 없으면서 감염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카드 하나를 버린 꼴이다.
정부는 병원을 공개할 경우 다른 병원들이 앞으로 메르스 환자 진료 및 신고를 기피할 수 있다는 이유도 들었다. 참으로 한심한 얘기다. 세계 일류라고 자처하는 우리 의료계의 직업윤리가 그 수준이란 말인가. 설사 그렇더라도 정부가 감독하고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병원 핑계를 대는 것은 방역 위기 상황에서 일선 의료기관을 장악하고 관리·감독할 능력이 전혀 없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결국 정부가 드는 이유 중에서 유일하게 수긍할 만한 것은 해당 병원의 영업 손실에 대한 우려뿐이다. 이는 사태 수습 뒤 적절한 보상을 하면 된다.
지난해 미국에서 메르스·에볼라 환자가 발생했을 때 병원과 환자 신원, 거주지, 동선 등이 상세히 공개됐다. 에볼라 대응에 실패했던 병원은 대표가 직접 나서 사과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혼란이 발생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병원 명단을 공개하면서 전염 발생 여부, 환자 관리 실태, 추가 감염 예방 조처 등을 상세히 설명한다면 병원 이용자와 지역 주민들이 오히려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고 합리적인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환자 집계를 두고도 은폐 의혹이 제기될 정도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사실은 사실대로, 잘못한 것은 잘못한 대로 투명하게 밝히는 태도야말로 국가적 재난 극복에 필수적인 정부-국민 간 신뢰·협력의 출발점이란 사실을 정부는 서둘러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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