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축제 행사의 하나로 해마다 6월이면 열려온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를 경찰이 금지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보수 개신교 단체가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해, 둘 다 금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지난 15년간 탈 없이 열려온 행사는 무산 위기에 빠졌다.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도 한참 후퇴하게 됐다.
경찰의 결정은 집회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다. 보수 개신교 단체의 집회신고는 성소수자 축제를 막기 위한 것임이 누가 봐도 분명하다. 대법원은 “다른 집회의 개최를 막기 위한 허위·가장 신고가 분명해 보이는 경우 나중에 신고된 집회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그 취지대로 행사를 허가해야 마땅한데도 경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중립을 가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축제를 방해하려는 세력의 뜻대로 성소수자 행사를 막은 것이다. ‘혐오 선동’을 인정하고 방조함으로써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훼손한 잘못은 결코 작지 않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허용되어선 안 된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비정상, 타락한 존재 따위로 몰아 집단적으로 혐오하고 차별과 폭력을 가하는 것이야말로 ‘인류에 대한 범죄’다. 유대인과 동성애자들을 가스실로 몰아넣은 나치나 세계 곳곳의 인종학살은 도덕적 순결이니 종교 따위를 내걸고 그런 짓을 저질렀다. 지금 일부의 ‘혐오 선동’도 성소수자들을 언제라도 폭력의 희생자로 밀어넣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짓이다. 중지해야 한다. 성숙한 문명사회는 소수자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차별과 폭력에서 보호하는 사회다. 혐오를 선동하고 방치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야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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