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거치면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 환자가 41명에서 64명으로 늘고 사망자도 또 나왔다. 메르스 공포가 본격화한 뒤 처음 맞은 주말 풍경은 스산했다. 서울 도심이 명절 연휴 때처럼 한산했고 영화 관람객 수는 평소에 견줘 20%가량 감소했다. 백화점 손님도 크게 줄어 매출이 뚝 떨어졌다고 한다. 각종 행사와 모임도 취소되는 등 대다수 시민의 일상 구석구석까지 메르스 불안감이 배어든 느낌이다.
정부가 7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내놓은 메르스 추가 대응 조처는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부분 ‘뒷북 대응’이라는 게 문제다. 환자 발생·경유 병원 24곳의 명단 공개는 일주일도 넘게 미뤄왔던 것이다. 그사이 시민이 스스로 명단을 만들어 공유했고 지자체도 환자 관련 정보 공개에 나섰다. 격리 대상자 전원을 보건소·지자체 공무원과 일대일로 짝지어 관리한다는 방안은 지난주 서울시가 내놓은 것이다. 시민과 지자체가 움직이고 나서야 중앙정부가 뒤따라가는 것이 씁쓸하기만 하다.
병원 명단 공개에서 보인 전문가답지 못한 모습도 아쉬움을 남긴다. 우선 일부 병원의 소재지와 이름 등이 잘못 표기됐다. 2~3일 동안의 준비 작업을 거쳐 공개했다고 하면서도 이런 오류가 걸러지지 않았다니 말문이 막힌다. 정부가 앞장서 유언비어를 생산하고 있다는 비아냥을 들을 만하다. 병원 이름과 소재지, 환자 발생·경유 시점 등만 간략히 공개한 점도 사려 깊지 못했다. 어떤 환자가 어떻게 발생했고 거쳐 간 환자는 병원 내 어디에서 진료를 받았는지 구체적인 경위와 함께 병원 쪽이 취한 사후 감염 예방조처 등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야만 공개의 실효성도 높이고 불안감을 줄일 수 있다.
정부는 메르스 대응 방향을 선회해 더 차원 높은 총력 대응을 펼치겠다고 다짐했지만 눈에 띄는 선제조처는 없었다. 지금 국민이 가장 불안해하는 지점은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인데, 정부는 이 가능성을 일절 배제한 채 대책을 내놓고 있다. 감염된 삼성서울병원 의사와 같은 행사에 참석했던 시민 1500여명에 대해 추적조사와 격리에 나선 서울시나, 강남·서초구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휴업령을 발동한 서울시교육청의 능동적 예방조처와 대비된다.
컨트롤타워의 공백 문제도 여전하다. 여야가 메르스 확산 방지에 초당적으로 협력하기로 합의하고, 보건복지부 장관과 서울·경기·대전·충남 자치단체장이 만나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등 정치권과 중앙정부, 지자체 사이의 갈등과 잡음은 정리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들을 한데 묶어세워 국가적 재난에 대처할 핵심 주체는 분명하지 않다. 이날 정부를 대표해 긴급 기자회견에 나선 이는 국무총리 권한대행인 최경환 부총리였다. 그는 2일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뒤 곧바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각료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했다가 6일 돌아왔다. 가뜩이나 총리가 공석인 상황에서 권한대행마저 메르스 확산의 결정적 시기에 자리를 비운 꼴이다. 다른 업무로 바쁜 최 부총리가 메르스 대처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왜 박근혜 대통령이 진두지휘에 나서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불안에 잠겨 주말을 보내는 국민에게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책을 설명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박 대통령은 주말 내내 특별한 일정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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