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일 정부서울청사의 ‘메르스대책지원본부’를 방문해 국가적 총력대응 체제를 강조하면서 “전문가 중심으로 즉각대응팀을 만들어 여기에 전권을 주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또 “메르스의 지역사회 전파를 막기 위해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협조, 방역당국과 지자체 방역대책본부 간 협력이 필수불가결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직접 일선 정부부처의 대책본부를 찾아 국가적 총력태세와 지자체와의 협력, 전문가 중심의 대응체제를 강조한 건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정부 컨트롤타워 부재’라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범국가적 총력태세가 갖춰지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메르스 대응을 총괄하는 정부 내 사령탑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중요한 건 정부의 누가, 어디에서 메르스 대응을 총괄할 것인지 분명하게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일이다. 국무총리든 부총리든 또는 장관이든 누군가에겐 분명하게 지휘권을 주고, 대통령은 바로 그 뒤에 그림자처럼 버티고 서서 수시로 직보를 받으면서 신속한 지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령탑을 어떻게 구축하고 유지할 건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박 대통령은 전문가들이 중심이 된 즉각대응팀을 구성하고 전권을 부여하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현재 일선 상황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와 즉각대응팀의 관계는 어찌 되는 건지도 혼란스럽다. 전문가 역량을 총동원하고 정부-민간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국민 불안을 잠재우려면 전문가의 의학적 판단뿐 아니라 일선 학교의 휴교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신속하게 판단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혼선을 방지하고 협력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정부 지휘체계를 세우는 게 우선이다.
중요한 건 대통령이 메르스 대응의 중심에 서 있다는 걸 모든 정부부처와 국민, 의료계 등 민간 부문에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에서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여러 형태로 보고했다. 필요할 때면 유선으로 통화했다”고 답변하는 걸 지켜보면서, 많은 국민은 ‘왜 대통령은 이 중요한 사안을 장관으로부터 직접 얼굴을 맞대고 보고받지 않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전화통화나 서류보고는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충분한 토론을 하는 데 아무래도 한계를 갖는다. 장관이 바쁘니 청와대까지 오라고 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건 변명이 될 수 없다. 이런 긴급한 사안에선 대통령이 장관을 부르거나 전화로 지시만 할 게 아니라 직접 부처나 현장으로 찾아가서 보고받고, 논의하고, 함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금 국민에게 믿음을 주고 공포를 잠재우는 건 바로 대통령의 그런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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