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확진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 가운데 두 명의 감염 경로가 새로운 우려를 낳고 있다. 보건당국이 방역활동의 전제로 삼고 있는 기존 감염 경로를 벗어났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경각심을 한층 높여야 하는 국면이 됐다.
그동안 삼성서울병원 내 감염은 응급실에 한정된 것으로 파악됐지만 이번에 확진된 여성 환자는 응급실을 거치지 않고 정형외과 외래진료를 받았을 뿐이다. 방사선 촬영 검사실에서 기존 환자와 접촉했거나 의료진을 통해 감염됐을 가능성과 함께 공기를 통한 전파 가능성도 제기된다. 어느 경우든 응급실 밖에서도 감염이 이뤄진 것은 분명하다. 경찰관인 다른 환자도 감염 경로가 불투명하다. 메르스 환자가 경유했던 병원에 들르긴 했지만 직접 접촉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후 의심환자로 격리됐다가 음성 판정을 받았으나 증상이 계속돼 재입원한 뒤 확진됐다. 만약 음성 판정에 잘못이 없었다면 이후 병원 밖에서 감염이 이뤄졌다는 뜻이 된다. 신속하고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대목이다.
정부는 여전히 지역사회 전파나 공기 중 전파 등 최악의 시나리오를 완전히 배제한 채 방역 대책을 짜고 있다. 안이한 대응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메르스가 밀접 접촉을 통해서만 감염된다는 기존 판단을 수정해 병원 같은 특수한 공간에서는 공기 중 전파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스트레일리아와 홍콩 보건당국도 메르스의 공기 감염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한다. 감염 경로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게다가 확진 판정을 받기 전까지 며칠 동안 여러 병원을 돌아다닌 환자들도 있다. 제3의 ‘슈퍼 전파자’ 후보군이다. 지자체들이 해당 병원을 봉쇄하거나 병동을 폐쇄하는 코호트 격리에 들어갔지만, 환자들이 머문 당시에 이미 수많은 접촉이 이뤄졌으니 추가 환자 발생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최근 환자 발생이 잠시 주춤했다고 해서 섣불리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대한민국 사람은 너무 겁이 많은 것 같다”는 등 경각심을 흐트러뜨리는 발언이 나오는 건 유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 방미 일정까지 연기한 마당에 정부·여당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방미 연기가 그저 임기응변식 결정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정부의 태도에 적극적인 변화가 있어야 마땅하다.
국민의 불안감을 씻어주는 건 말로 될 일이 아니다. 정부가 정확한 판단과 과학적인 대처를 행동으로 보여줄 때 국민은 믿고 안심할 수 있다. 사태 악화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조짐이 하나둘 나타나는 이때야말로 단호한 판단과 대처가 절실하다. 삼성서울병원의 외래환자에 대한 격리 조처와 함께 응급실뿐 아니라 병원 전체에 대한 역학조사도 할 필요가 있다. 감염병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경계’로 높이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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