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조정실 등이 11일 발표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안을 보면, 이 정부가 말로만 ‘기후변화 대응’을 외쳤을 뿐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되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세계가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저탄소 경제로 이행하기에 바쁜데, 우리만 에너지 다소비 산업과 원자력을 끌어안고 어떻게 미래를 헤쳐나가자는 것인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가장 강한 감축 시나리오대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전망치(BAU) 대비 31.3% 줄이더라도 배출량은 5억8500만t이다. 이는 2009년 이명박 정부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2020년 배출량 5억4300만t보다 많다. 지난해 리마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합의한 ‘후퇴 금지’ 원칙에 어긋나는 ‘반칙’이다. 정부는 “자발적인 약속일 뿐 법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일방적 해석일 뿐 당사국 총회에서 우리 정부는 분명히 감축목표 후퇴 금지에 합의했다. 국제 신뢰를 잃으면 협상력이 떨어져 국익 손실로 이어진다.
게다가 이 약속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에 명시돼 있을 뿐 아니라, 환경부는 불과 1년 전 이 수치를 기준으로 감축 로드맵을 확정하고 배출권거래제의 이산화탄소 할당량을 정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녹색기후기금(GCF) 출범식과 유엔 기후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이 약속을 확인한 바 있다. 산업계의 압력에 밀려 손바닥 뒤집듯 바꿀 약속이 아닌 것이다.
현재보다 갑절 이상 감축을 약속한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과 멕시코도 각각 2030년과 2026년에 온실가스 배출 정점에 도달한 뒤 감소로 돌아서겠다는 감축안을 내놨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시나리오를 보면 그래프가 끝없이 상승할 뿐 언제 정점을 찍고 감소하는지가 없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의 인식 수준은 시민사회보다 못해 보인다. 최근 한 공론조사에 참가한 시민들은 “다른 나라가 온실가스 배출을 안 줄여도 우리는 줄일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감축안 계산의 바탕이 된 기초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절감 잠재력을 현실성 있게 다시 따져야 한다. 과다 산정된 경제성장과 전력수요 전망도 재검토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온실가스 배출 세계 7위에 걸맞은 미래지향적인 감축목표를 세워야 한다. 감축안을 내는 시한이 10월이니 서두를 것도 없다. 이달 안에 유엔에 제출한다며 공청회 한 번으로 공론화를 얼렁뚱땅 마칠 생각은 아예 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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