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의 실패’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14일 현재 삼성서울병원에서 비롯된 환자 수는 71명으로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 추가로 확진된 이 병원 의사와 환자이송요원 등이 확진 전 근무를 계속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급기야 13일 밤 병원을 부분 폐쇄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돌이켜 보면,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지금까지 몇 단계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병원 3곳을 거치면서도 메르스로 의심받지 않았던 1번 환자가 5월17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비로소 메르스 진단을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성과다. 그러나 5월27일 응급실에 온 14번 환자는 사흘간 방치돼 무차별적인 병원 안 감염을 유발했다. 두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을 거쳐갔다는 사실이 정부의 정보공개로 사전에 알려졌더라면 이런 일을 방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삼성이 아니라) 국가가 뚫렸다”는 이 병원 감염내과 과장의 발언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오는 삼성서울병원이라면 1번 환자를 진단한 뒤 더욱 경각심을 갖고 의심환자의 내원을 포착했어야 했다.
더욱 큰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5월29일 질병관리본부의 통보로 14번 환자를 격리한 뒤 후속 조처에 나섰지만 터무니없이 부실했다. 응급실을 드나든 수많은 환자·보호자·방문객들이 관리망을 술술 빠져나갔고 심지어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와 환자이송요원조차 격리 대상에서 빠진 채 근무를 했다. 이때라도 병원 실명이 속히 공개됐다면 추가 확산을 줄일 수 있었으나 정부나 병원 모두 쉬쉬하기에 급급했다. 소속 의사의 메르스 확진 사실도 늑장 공개했다. 서울시가 관련 정보 제공을 요구했지만 병원 쪽은 10여일을 버티다 겨우 부실한 자료를 내밀기도 했다.
삼성서울병원의 실패는 감염병에 대한 전문가답지 못한 초기 대처, 전염 방지라는 공공의 이익보다 병원의 사익을 우선시한 정보 은폐, 일류 병원이라는 권위와 대중의 신뢰를 이용한 오만한 자세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기에 국가의 기본 임무조차 민간에 떠넘기는 정부의 무책임한 행태도 한몫했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관계자는 ‘삼성서울병원 쪽이 의심환자를 충분히 파악해 관리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실토했다. “삼성서울병원이 국가 방역망에서 사실상 열외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 그대로다. 삼성서울병원의 부분 폐쇄도 정부 즉각대응팀의 폐쇄 명령이 아니라 병원 자체적 결정에 따른 것이다. 이쯤 되면 정부의 ‘삼성 봐주기’ 의혹을 거의 확신으로 격상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국내 최고의 병원이 후진적 감염병 확산의 최대 숙주로 전락한 현실은 단지 충격적이란 말로만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우리 사회의 병폐가 집약된 증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사실 규명을 통해 메르스 사태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