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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엘리엇 사태가 국내 재벌에 주는 교훈

등록 2015-06-17 18:32수정 2015-06-18 08:55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표 대결을 앞두고 삼성물산과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외국계 헤지펀드가 국내 최대 재벌 계열사의 경영행위에 제동을 걸고 나온 터라 나라 안팎의 관심이 크다.

삼성은 당혹감을 감추고 엘리엇의 행동에 ‘나쁜 의도’가 숨어 있음을 부각하려 애쓴다. 물론 무자비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전력이 있다. 가격이 폭락한 아르헨티나 국채 4억달러어치를 헐값에 사들였다가 액면가 보상 소송을 내 13억3천만달러를 챙긴 것으로 악명이 높다. 지난해 아르헨티나 재정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난이 일 정도다. 콩고와 페루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이번 역시 투자기업(삼성물산)의 장기적 발전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약점을 물고 늘어져 과도한 차익을 챙기려 한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설령 엘리엇이 ‘불량펀드’라 할지라도 삼성이 그들의 먹잇감 사냥에 빌미를 준 것은 숨길 수 없다. 엘리엇은 “상대방이 자초한 일”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들의 태도가 못마땅하긴 해도 뼈아픈 지적이다.

이번에도 시장 참가자의 눈엔 삼성의 빈틈이 컸다. 합병비율 산정 때 삼성물산의 가치가 저평가됐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3세 승계를 위해 합병을 몰아붙이는 것으로 보이니, 이 부회장의 지분이 없는 삼성물산의 주주들이 볼멘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엘리엇의 ‘나쁜 의도’와는 무관하게, 삼성은 이번 합병 작업이 3세 승계 작업의 일환이 아니라 시너지 극대화를 위한 합리적인 경영행위라고 자신있게 시장을 설득할 수 있는가.

삼성물산이 보유한 자사주(5.76%)를 케이씨씨(KCC)에 매각한 것도 논란거리다. 표 대결을 앞두고 우호지분을 늘려야 하는 처지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회사와 전체 주주의 재산인 자사주를 지배주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활용했다는 비난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번 사태를 핑계 삼아 재계 일각에서는 경영권 방어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모양이다. 국내 기업이 외국계 헤지펀드에 휘둘리는 건 국민경제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지만, 재벌 스스로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추려는 노력은 외면한 채 편법 승계에만 몰두하는 상황에서는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삼성 이외에도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늘리거나 안정적인 승계를 위해 계열사 합병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곳이 여럿 있다. 이번 사태는 주주와 시장을 무시하는 재벌의 승계 관행이 자칫 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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