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처음 발생한 지 한달이 다 돼 가는데도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와 불투명성, 뒷북 대응 등 고질적인 병폐는 고쳐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메르스 잠복기가 2~14일이라고 판단했지만 최근 들어 환자 접촉일로부터 14일을 넘긴 뒤 발병한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잠복기가 최장 14일이라면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진원지로 하는 메르스 확산은 지난 주말 이전에 그쳤어야 한다. 하지만 대구시 공무원인 154번째 환자 등은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한 뒤 16~17일 만에 증상이 나타났고, 이와 유사한 사례가 계속 추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애초의 잠복기 판단이 잘못됐거나, 병원을 방문한 이후 가족 접촉 등 다른 경로로 감염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자의 경우 방역체계의 전환이 필요해진다. 환자 접촉자 격리와 병원 폐쇄 등의 기간이 14일의 잠복기를 기준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정부가 극구 배제해온 ‘병원 밖 감염’이라는 새로운 전파 경로가 나타난 것인 만큼 역시 추가적인 방역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두 가지 가능성을 일절 부인하며 “확진이 지연된 것일 뿐”이라는 어정쩡한 설명만 하고 있다. 그러면서 추가로 확진되는 환자의 발병일이나 가족관계 등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한다. 잠복기와 가족 간 감염 가능성 등을 따져볼 기본 정보를 아예 감추겠다는 의도로 의심된다. 잠복기 판단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그 근거 자료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입장이 곤란해지는 정보는 일단 비공개하고 보는 ‘비밀주의 병’이 또 도진 듯하다.
늑장 대처도 여전하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16일 유가족과 확진환자, 자가격리자 등에 대한 심리 지원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메르스 사망자가 20명, 확진자가 162명이나 발생하고, 현재 격리 중이거나 격리가 해제된 ‘격리 경험자’가 1만명을 넘어선 시점에야 이런 대책이 나왔다. 메르스로 보호자가 격리·입원 중인 아동·장애인·노인 등을 대상으로 긴급돌봄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나, 역학조사 지원을 위한 경찰 신속대응팀을 꾸리기로 한 것도 때늦은 감이 크다. 종합 컨트롤타워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일찍이 챙길 수 있었던 사안들이다.
정부가 사태 초기의 실패 요인을 한달이 다 되도록 떨쳐내지 못한 채 답습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특히 청와대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대응해달라는 국민의 요구와 기대 또한 아직 채워지지 않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들어 방미까지 연기한 박근혜 대통령이 요즘 보이는 행보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아무리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한 말이라고 해도 메르스를 ‘중동식 독감’이라고 표현한 것은 과학적이지도 않고 경각심도 느껴지지 않는 태도다. 이런 식으로 “이달 말까지 메르스 사태가 잦아들게 하겠다”는 정부의 목표 제시가 얼마나 신뢰를 얻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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