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18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박근혜 정부의 세번째 국무총리로 인준했다. 이완구 전 총리가 성완종 파문에 걸려 낙마한 지 52일 만이다. 메르스 사태의 와중에 정치싸움을 하는 걸로 비칠까봐 야당도 ‘황교안 국무총리’를 결사적으로 막지는 못한 듯하다. 새 총리 개인에겐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지만, 자료제출 거부 또는 늑장 제출로 인사청문회를 무력화시킨 사람을 이렇게 쉽게 국회가 인준해버린 건 바람직스럽지 않다.
특히 황 총리가 국회 인준 직후 법무부 장관직을 그만두면서 낸 이임사를 읽어보면, 그에 대해 줄곧 제기됐던 우려가 사그라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황 총리는 ‘헌법 부정 세력으로부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켜냈다’는 걸 가장 큰 치적으로 꼽으면서 “헌법 가치를 확고히 지켜서 국가개혁을 이뤄달라”고 당부했다. 총리 인준 이후에 이런 내용의 이임사를 낸 걸 보면, 그는 국무총리가 돼서도 헌법 부정 세력 척결과 헌법 가치 수호를 통한 국가개혁을 맨 앞자리에 높고 국정을 운영해 나갈 생각인 듯하다. 법무부 장관 시절 그의 맹목적인 공안 중심 사고 탓에 민주주의 가치가 퇴조하고 분열과 대립이 심해졌는데, 이에 대한 최소한의 자성은 찾아볼 수 없다. 국무총리가 돼서도 그런 인식에 바탕해 처신할 거라는 예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개인의 이념적 성향과 총리로서의 정책 수행은 별개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종교 문제에서도 드러나는 그의 편향과 아집은, 이것이 단순한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소통하고 함께 일을 해나가는 데 심각한 장애가 있음을 드러낸다. 그렇지 않아도 ‘독선과 불통’의 아이콘이란 평을 듣는 대통령 밑에서 국무총리마저 편협하고 외골수의 행태를 보인다면 이 나라는 과연 어떻게 될까. 과거 어느 총리보다 황 총리의 취임이 불안한 이유가 여기 있다.
황 총리는 취임사에서 ‘안전한 사회, 잘사는 나라, 올바른 국가’를 강조했다. 하지만 ‘안전한 사회, 올바른 국가’가 헌법 가치 수호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걸 지금 메르스 사태는 똑똑히 보여준다. 현시점에서 국무총리의 가장 큰 임무는 대국민 소통과 정부 부처 통솔에 실패하고 있는 대통령의 약점을 보완하는 일이다. 정부 부처가 능동적으로 제구실을 하게 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새 총리에게 이걸 바라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실낱같은 기대를 접지 못하는 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너무 위태롭고 비상한 탓이다.
대통령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게 국무총리의 역할이 아니다. 공안 중심 사고와 편협한 태도를 벗어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걸 황 총리 스스로 깨닫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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