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사설

[사설] 지체된 정의, ‘이주노조 합법화’

등록 2015-06-26 18:34수정 2015-06-26 18:34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도 노조를 만들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25일 나왔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2005년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을 만들고 서울지방노동청의 노조설립 신고 반려를 취소하라며 소송을 낸 지 10년 만에 이주노조가 합법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번 판결은 취업자격이 없는 외국인도 노조를 결성하고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사법부의 첫 판단이다. 대법원은 “다른 사람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은 노동조합법의 근로자에 해당하며, 취업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헌법과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이 노동3권 보장과 함께 국적·인종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판결이다. 내국인 노동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노조 가입이 제한되지 않는 것처럼 미등록 이주노동자라고 해서 노동기본권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 역시 지극히 상식적이다. 대법원 말대로 이번 판결은 이미 확립된 국제기준을 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런 상식과 원칙이 실현되기까지 무려 8년4개월이 걸렸다. 대법원은 2007년 2월 이 사건이 상고된 뒤 주심 대법관이 세 명이나 바뀌는 동안 판결을 미뤄왔다. 특히 양창수 전 대법관은 임기 6년 내내 이 사건을 방치했다. 법리상 쟁점이 복잡하거나 많은 것도 아니었으니 당연한 결정을 일부러 늦춘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사이 이주노조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간부들이 표적이 돼 잇따라 강제추방을 당했고, 임금체불이나 부당노동행위를 겪어도 단체교섭은커녕 항의조차 어려웠다.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들이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그런 현실을 인권의 보루여야 할 대법원은 8년 넘게 외면했다. 정의 구현과 인권 보장의 사명 대신 정부와 기업의 현실적 이익을 더 앞세운 탓일 것이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대법원은 더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이주노동자를 단속과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정부의 태도도 이번 판결을 계기로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