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친박계가 유승민 원내대표를 몰아내겠다고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유 대표 사퇴를 촉구하는 연판장을 돌린다 하고, 29일 최고위원회에서 사퇴를 촉구하다 안 되면 자신들이 당직을 사퇴하겠다고 을러댄다. 당무를 집단적으로 거부하겠다 하는가 하면,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설을 흘리기도 한다.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를 지목해 사실상 퇴출을 촉구하자 의원들이 돌격대로 나서는 행태가, 현대 민주정당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무엇보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유 대표가 의회정치 원리에 비춰 잘못한 게 없음에도 몰아내려 한다는 점이다. 핵심 쟁점인 국회법 개정에서 그가 한 일은 여당을 대표해 야당과 협상을 했고 여당 안에서도 찬성 의견을 모아 국회 의결을 추진한 게 전부다. 비난은커녕 대화와 합의 정치를 원만하게 실천했다고 칭찬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런 사람을 단지 대통령이 거부한다고 해서 문책하자는 것은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다. 더욱이 새누리당은 지난 25일 의원총회에서 다수 의견을 모아 원내대표의 재신임을 결의한 바 있다.
지금 친박계의 행동은 이성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 자유당 시절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를 정당화하고 심기를 경호하고자 빚었던 ‘우의 마의 소동’을 연상시킬 정도다. 당시 대통령이 사사오입 개헌으로 무리하게 3선 도전의 길을 열자, 자유당은 대대적으로 이승만 지지 관제시위를 조직했다. 그것도 모자라 소달구지, 마차 짐꾼까지 끌어모아 시위를 벌이도록 했는데, 그것과 지금이 별로 다를 게 없다.
더욱 문제는 정치권을 향해 독설을 퍼붓고 장막 뒤로 숨은 듯한 박 대통령이다. 만약 대통령이 국회 쪽과 견해를 달리한다면 그것대로 정치권과 말로 논의를 시작하면 된다. 목표의 당위성과 추진 경로, 방법론을 두루 논의하라고 당정청 협의라는 제도도 마련돼 있다. 이는 오늘날 의회 민주주의와 삼권분립 제도를 시행하는 세계 모든 나라 지도자가 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박 대통령은 지령을 딱 내려놓고 높은 곳에 앉아서 행동대원들이 결과물을 만들어 오길 기다리는 듯한 자세다. 봉건왕조의 군주나 조폭 우두머리의 그것이 연상되는 행동이다. 이런 식으로 지도력을 행사하는 방식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과 친박계의 정도를 벗어난 과격한 행동이 점입가경이다. 민주적인 의사소통, 현대 민주정치의 원리는 완전히 실종됐다. 대통령과 여당이 국민을 이렇게 불안하게 만들어도 되는 건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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