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일 믹타(MIKTA) 국회의장 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한 멕시코·오스트레일리아·인도네시아 국회의장을 청와대에서 접견하면서, 회의 주최자인 정의화 국회의장은 초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애초 박 대통령 주최로 한국을 포함한 4개국 국회의장의 청와대 오찬이 예정돼 있었는데 며칠 전 갑자기 오찬이 접견 행사로 변경됐고 이 과정에서 정 의장은 초청 명단에서 빠졌다는 게 국회와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단순한 접견 행사엔 굳이 정의화 의장이 동행할 필요가 없다”는 게 공식 해명이지만, 경위를 보면 영 석연치가 않다.
우선, 오찬 간담회가 갑작스레 단순한 접견 행사로 축소된 배경이 불투명하다. 청와대 쪽은 “대통령의 다른 일정 때문에 확정되지 않은 오찬이 접견으로 대체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3개국 국회의장과의 약속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대통령 일정이 뭔지에 대해선 설명이 없다. 믹타는 한국 주도로 2013년 9월 결성한 5개 중견국 협의체로, 우리가 많은 공을 들이는 회의체다. 그런데 4개국 국회의장이 참석하는 오찬을 뚜렷한 이유 없이 변경했다면, 그런 청와대 행동 자체가 외교적으로 큰 결례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가 일정을 바꾼 배경에 정 의장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건 더욱 심각한 일이다. 정 의장이 ‘수정 국회법 개정안’을 주도했고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곧바로 재의에 부치겠다고 말한 게 대통령을 화나게 했으리라고 정치권에선 보는 것이다. 물론 청와대는 부인한다. 하지만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겨냥한 대통령의 집요한 공세를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는 여당인 새누리당 안에도 거의 없을 듯하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분석이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박 대통령의 정치적 편협함과 오만함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지도부, 심지어 입법부 수장까지 얼굴을 맞대지 않으려 하면, 대통령은 누구와 국정을 논의하고 운영해 나가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명령만 내리면 모든 기관이 알아서 복종하는 절대왕정을 꿈꾸는 건 아닐까 하는 섬뜩함마저 든다.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는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모든 걸 자기 뜻대로 할 수는 없다. 대통령 스스로 그런 착각과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아무리 소통과 협치를 얘기해도 소용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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