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를 수사해온 검찰 특별수사팀이 2일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리스트의 8명 가운데 이완구 전 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6명은 무혐의 처분한 것이 82일 동안의 수사 결과다. 진작부터 짐작하긴 했지만, 초라하기 그지없다.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후보 캠프의 핵심 인사와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등 6명을 무혐의 처리하면서 ‘성완종 리스트’의 상당 부분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를 댔다. 검찰 말대로 리스트가 ‘사실무근’이라면 성 전 회장이 죽음으로 고발한 권력비리 의혹은 거짓말이 된다. 죽은 이는 더 말을 못하니 대선자금 따위 민감한 의혹을 덮으려면 편한 핑계일 수 있겠다.
그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했는지는 의문이다. 검찰은 빼도 박도 못할 정황이 드러난 두 사람만 소환 조사한 뒤, 나머지 6명에 대해선 한참이나 직접 조사를 미뤘다. 계좌추적은 아예 시도도 하지 않았고, 중간 전달자라는 새누리당 당직자 김근식씨는 한 달가량 방치했다. 그사이에 성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 여부 등을 꼼꼼히 챙겼다지만, 그런 조사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야 할 일은 외면한 채 엉뚱한 곳만 헤맨 꼴이다. 검찰은 수사 마무리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때에야 6명에게 소환 대신 서면조사서를 보내 해명만 들었다. 수사를 그렇게 해놓고선 “당사자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다른 증거가 없으며, 경남기업 자금 사정상 그런 거액이 나올 수 없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줬으니 교묘한 왜곡수사란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검찰은 그러면서 2007년 특별사면에 성 전 회장이 포함된 데 대해선 노건평씨를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공소시효가 지난 일이어서 결국 불기소 처리할 일이었는데도 보란 듯이 소환하고 수사 발표 때도 돋보이게 내놓았다. 청와대가 특별사면 경위에 대한 수사를 직접 주문한 것을 그대로 따른 ‘물타기’ 수사란 손가락질은 피할 길 없다.
검찰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사건의 본질을 왜곡한다는 비판은 요즘 부쩍 잦아졌다. 정윤회씨 등 비선권력의 국정개입 의혹을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으로 뒤바꾸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게 전가한 것 등이 그런 예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국민을 속이려 한다는 의심을 받는 게 정상일 순 없다. 특검 재수사를 통해 엄중히 규명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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